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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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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가 그 추억의 얘기들


  어제는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 외삼촌들이 왔었다. 내가 쓴 글 중에 유독 외가집에 관한 내용이 많은 이유는 어려서부터 외가에서 살아서였다.

  모친은 시골뜨기였고 도회지의 개망나니 총각과 멋도 모르게 결혼을 하였는데 그것이 배고품을 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알고 있어서였다. 그렇지만 남편이라는 작자는 술탁주에 개망나니처럼 자란 철딱서니 없는 문외한이었다.

  첫 아이가 낳자 집에서 기를 수 없었다.

  내게 고모네 집에서 의지하고 있던 생활을 청산하고 독립하기 위해서 달동네로 이사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부친은 개망나니였고 성격이 지랄 같았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사고를 쳤으므로 믿고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 번은 건재상회에 운전수로 취직을 하였는데 음주 운전을 하다가 다른 차와 박치기(모친의 말)를 하여 형무소에서 형을 살았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지참금을 지불하면 나와서 가석방을 할 수 있었지만 그 돈이 없어서 형을 살게 된 것이다.

  운전 기사인 매형과 함께 다니면서 조수로 지냈지만 면허을 따지 못해서 늘 조수 생활을 했었다. 그 뒤, 면허 시험에 어찌어찌하다가 합격을 하곤 천금같은 면허증을 받고서 건재상, 철물점, 목재상을 운전기사로 전전하다가 격국에는 음주운전자라는 낙인이 찍혀서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폐인으로 전락하게 되기까지 부친은 무지한 소치인이었다. 그러므로 돈 벌이는 평생에 단 한 번도 갖다 주주 않았으며 그 돈도 모두 술을 마시는데 탕진하였으므로 집 안은 정상적이지 못하였고 처음에 고모네 집에서 얹혀 살면서 시집살이를 시작한 모친은 온갖 구박을 다 받아야만 했다. 그 설음으로 이를 갈고 이불 속에서 눈물을 짓흘리던 새댁이 첫 아이를 낳은 곳은 자신의 친정이었다.

  외가에서 나는 왕자 대접을 받고 자랐다. 만약 내가 고모네 집에서 살았었다면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을까?

  모친은 나를 낳고나자 분가를 하여야 한다고 결심을 굳히었다.

  모진 설음을 언제까지고 받을 수는 없다고 눈물을 머금고 식모살이를 하는 곳에서 탈출하듯이 나와서 언덕받이의 달동네로 세를 살더라도 그게 났다고 하면서 따로 살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어머니의 인생은 고생의 나날이었다.

  보따리 장사부터 시작하여 고물장사를 하면서 그나마 조금씩 형편이 나아져 갔고 자식 아들만 내리 네 명을 낳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얘기를 중단하고 외가에 맡겨진 내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보자!


수정한 내용 : 어제는 외삼촌들과 사촌 누이가 찾아 왔었습니다. 모친이 계신 요양병원에 문명을 온 것이지만 점심 때였고 식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왔었고... 어린 시절에 외가에서 낳고 그곳에서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던 내가 간직한 많은 추억들로 인하여 내 문학은 외가에 대한 얘기들로 가닥차고고 넘칩니다. 곳곳에 나는 그런 얘기들을 물어 놓곤 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