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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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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의 뇌경색

2017.03.20 14:39

文學 조회 수:10

  그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벌써 3개월 째였다.

 M 병원에서 1개월, S 재활 병원에서 1개월, 그리고 현재는 큰 아들 박 현우(朴晛旴)가 집에 데리고 가서 모시고 있었는데 딱 1개월째였다. 그야말로 3개월이 전광석화와 같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에 천만 다행인 점은 뇌경색이 재발하지 않았다는 점이었고 점차 차도가 있어서 처음에는 화장실 출입도 못했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마음대로 다녔으며 식사도 함께 하였다.
  사실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풍이 머리를 때리고 간 이후부터 그녀의 삶은 달라지고 말았다. 항상 누군가가 간병을 봐야 했다. 그래서 주변에 누군가가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으며(좌불안석)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아주 사소하고 간단한 행동에 국환되었다. 그로인하여 자신을 따르는 주변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괴롭혀야만 했으므로 본의 아니게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서, ‘졸지에 거동을 할 수 없는 환자가 된 사실. 언제까지 다른 사람에게 간병을 하여 지낼까?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만 있다면 원이 없겠는데...’ 하는 그녀만의 고민이 있었다.
  “아들아, 난 좀 요양병원에 보내다오!”
  그녀는 불쑥 그렇게 말했는데 밤새 변비로 인하여 고생하였으므로 지레 겁을 냈다. 혹시나 아들이 자신으로 인하여 잠을 자지 못하였는가 하고...  

  방 안에는 아들과 자신이 자고 있었다. 며느리는 다른 방으로 가서 자고 있었다. 부시럭 거린다고 잠을 못자겠다고 항변을 하다가 결국에는 다른 방으로 가서 잤던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나마 거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중 다행이었다. 아들에게 와서 이만큼이나마 좋아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하는 것도 죽기 보다 싫었다.
  게으름의 극치.
  그로인하여 그녀는 항변을 하기에 이른다.
  “싫어! 운동기구로 당기로 놓는 걸 하고 오면 손발이 저리고 아파서...”
  그리고는 결국에는 자신이 살 길을 찾았는데 그게 요양병원이었다.
  “나 좀 요양병원에 데려다 줘!”
  “한 번 병원 가겠다고 더 하시면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그래... 병원에 가서 지내고 싶어!”
  아들은 노모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무엇 때문이에요! 그렇게 고생하여 살다가 이제 아들과함께 사는데... 그게 소원이라고 병원에 가시겠다고 스스로 고집을 피우는 이유가 뭐예요?”

  노모는 아들이 버럭 화를 낼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으므로 한편으로는 겁이 버럭 났다.
  눈을 지끈 감고 입을 악문체 눌러 참는다. 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웬일인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답담함을 유발하였다.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는 것도 힘들었다. 하루종일 기다림도 지쳤다. 아들은 힘들게 일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것을 눌러 참는다.  부모친에게 내게‘t그 소리가 더 나오면 
  운동을 하러 나갔다 오면 뼈마디가 욱신거리며 쑤셨다.
  여전히 변비가 괴롭혔고 변비약을 먹게 되면 설사를 했다. 그래서 변을 보기도 전에 흘렸는데 그녀는 그것를 감추지 못했다.
  1) 자신의 수발을 드는 간병인들을 볼 때마다 미안했지만 행동이 자유롭지 못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요구하는 게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미안한 마음으로 인하여 언제까지고 의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로서는 최선책을 찾았는데 그건 요양원에 가는 것이었고 그런 마을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들었다.
  “할머니 내가 잘 아는 병원이 있는데... 어때요! 가보시겠다면 함께 구경 한 번 가죠!”
  “비용은 얼마우?”
  내키지 않았지만 은근히 지금의 삶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처럼 좋아했다. 여기서 그녀가 느끼는 것은 농담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도 아니었다. 어떤 말을 듣고는 이내 그것에 대한 충동을 느끼는 건 중풍에 걸리기 전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제가 소개하면 아주 저렴해요! 괜히 아들 내외 고생시키지 말고... 속 시원하게 가기로 하는 게 어때요!”  “가만있어 봐요! 생각 좀 해보고...”
  아들이건 동네 부녀회장이건 그렇게 말하는 데는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었으므로 크게 서두를 건 없다고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 밤을 자고 난 뒤에는 마음이 바뀐 것이다.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병원에 가겠다고 의사를 밝히게 된 것이다. 엄청난 반전이다. 하지만 지금에 있어서 각오한 바는,
  “죽기밖에 더하겠냐?” 하는 나름대로의 무책임도 한 몫했다.
  “엄니는 왜, 그런 말을 해요! 마치 세상을 더 이상 살기 싫어하는 것처럼...”
  아들과 둘이서 밤 늦은 시각. 집에서 하천을 따라 근처 초등학교까지 상류로 걸어가는 동안 줄 곳 노래를 불렀다.
  9월 초순으로 접어들면서 해가 저물게 되면 날씨가 제법 쌀쌀 해졌다.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걷는 아침 녁.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시내 한방병원으로 침을 맞으러 가기 위해서 지팡이를 짚고 터덜거리면서 걸어가는 자신이 그처럼 서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의 서릿발 같은 명령으로 며느리까지 한통속이었다.
하루는 며느리가 없던 날이었을 것이다. 침을 맞으러 갔다가 진료를 끝내고 난 뒤 며느리던가 아들을 기다려야만 했는데 간호원이 택시를 불렀으니 내려가서 타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처음으로 택시를 탔다. 그런데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아들이 택시에서 내리는 자신을 부축이면서 택시 기사에게 묻는다.
  “요금은 얼맙니까?”
  "받았습니다.“
  택시비는 미리 자신이 지불했었다. 그 누구도 그걸 막을 권리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들은 자신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또 한바탕 전쟁을 치를 판이었다.

3.  아들 내외는 자신이 동거하여 살기 시작한 뒤로는 더 많이 부부 싸움을 벌일 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울었다. 말로 싸우고 있는 아들 내외가 마치 자신 때문에 부부싸움을 벌이기라도 하는 것만 같아서다.
  “그만들 해!”
  “엄만 가만 계세요! 이 사람 원래 그처럼 매력이 없는 남자인 줄은 알았지만 지금도 그렇잖아요! 제가 어머니께 못하고 잘하고는 모두 이 사람에게 달려 있고...”
  “그래, 너 잘났다. 그럼, 어떻게 하자고...”
  “다만 상냥한 말 한 마디 해주면 되는 데 그럴 못하느냐? 이거죠!”
  그녀는 괜히 트집을 잡았고 그에 뒤질세라 아들도 계속하여 좋지 않은 소리로 오갔는데 그 소리가 방 안에서 울려 퍼졌으므로 누가 보아도 싸우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결국에는 이혼까지 들먹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며느리가 소리를 지르고 욕지거리까지 서슴치 않는다.
  이렇게 부부 싸움을 할 때는 의례적으로 아들은 자신의 어렸을 때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도 지금 자신이 부부 싸움을 하는 의도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비수가 되어 들려 왔다. 어머니는 울고 계셨고... 어떻게 이런 모든 것이 이제는 거꾸로 되어 버린 것일까? 자신과 아내의 부부 싸움은 그렇다치고 그 사이에서 가슴 아프고 상처 받는 모친을 두고 볼 때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했다.
  집에 늙은 노모를 데려다 놓고 계속하여 의견 차이를 보이는 아내와 자신에게 있어서 이것은 절대적으로 보이지 말아야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내와 부부 싸움에 있어서 그 사이에 끼인 모친의 경우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식이었다. 그들 부부는 오히려 모친이 동거를 시작하면서 싸움이 줄었다. 그 전에는 더 횟수가 많았고 더 자주 싸웠는데 함께 일하면서 늘상 마주보는 관계였다. 그렇지만 그런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밤에는 한 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었고 그래서 화해의 실마리는 잠자리에서 풀렸었다.
  노모가 함께 기거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된 것이다. 우선 아내가 잠을 못 잔다고 다른 방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공교롭게 그들 사이로 장벽이 하나 막혔는데 그로 인하여 괴로움을 겪는 건 아내였다. 아내의 병적인 증세가 시작되었던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오히려 이제는 아내가 병원에 다니는 형편이 되고 말은 것이다.
  중간에서 그는 두 여자의 사이에 끼어 든 것처럼 인식되었다. 자신은 한 방에서 아내와 함께 잠을 자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4, 사실 그에게는 자영업을 운영하여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었다. 이것이 본의 아니게 차질을 빚게 됨으로서 엄청난 차질을 빚기에 이른다. 모친은 3개월 동안 자신을 물신양면(?)으로 괴롭혔다.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작업을 할 수 없기도 했으므로 주문 받았던 물량을 소화할 수 없었다. 물론 이것이 모친으로 인하여 발생한 부분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기준은 없었다. 하지만 아내가 무엇보다 모친으로 인하여 그에 따른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간병인으로서 자주 자처하게 됨으로서 함께 일하던 작업장에서 자주 비게 됨으로서 능률적인 면에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 부분이 어쨌튼 아내에게는 못마땅한 부분이었고 노골적으로 양쪽을 치중하는 문제점이 겹쳤다고 항의를 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싸우는 내용도 모친에 관계되는 부분이 없잖았으므로 울음을 터트리는 어머니를 차마 두고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심약해져 가기만 했다.

5. 1개월이 넘어가면서 모든 것은 무마되는 것처럼 약해졌다. 아내는 어느 정도 수긍하기에 이르렀고 모친도 처음보다는 많은 차도를 보였다. 그렇지만 모친은 어디에서도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좌불안석이었다. 병원에서 있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퇴원을 하여 아들 집에 함께 산다는 것이 늘 꿈이었고 희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함께 살게 되면서 더 힘들고 불안스럽기만 했다.
  아들의 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다. 새벽에 일어났고 밤 늦게까지 야간 잔업을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으며 모처럼 아들과 함께 운동을 나서는 것도 부담이 갔다. 그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에게 운동을 시켜야만 했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그토록 안스러운 것도 모두 자신의 탓만 같았다.
  “오늘은 내려가서 자고 와라! 좀 달래주고...”
  “그 사람은 오히려 놔 둬야 해요!”
  "그러지 말고 제발 좀 싸우지들 마라! 네 여자잖아 우선은 돈을 관리하더라도 보는데서 무안을 주는 법이 어디있니...“
  “어버니도 그 여자 하는 소리 들었잖아요!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그것도 안 되면 이혼하겠다고 달려 들고... 하는거!”
  모친과 함께 밖으로 나와서 걸으면서 그는 모친에게 언성을 높여는데 사실은 자신의 주장이 확신시키고저 그랬었다.
 
5. 마을 회관에서조차 할머니들에게 왕따를 당하였다. 이유인즉, 심난하다는 것이었다. 
6. 모친이 집에 함께 기거하게 됨으로서 많은 변화가 발생하고 말았다. O  
   
  그때까지도 그녀는 의향이 없었다.

  그런데 돌연 마음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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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9일 금요일
  김포 G.J 로 출장을 간다.
1)생각 모음
  대전역에서 기차에 탑승을 한다. 시간은 06시 05분. 옥천역에서 타지 않고 대전역까지 온 것은 출장을 갔다온 뒤에 대전에서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이틀전에서 재료를 구하러 갔다 왔었는데 점심시간으로 인하여 철재상회에서 부랴부랴 필요한 간단한 재료만을 두 가지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었으므로 기다릴 수 없어서였다. 미처 다른 것은 남겨두고 유독 철재 상회 두 곳에서 잔넬, 평철, 마루모 만을 구입한 것은 아내가 기계의 몸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다른 부속품과 재료를 오늘 다시 구입하려고 차량을 대전역 뒤편의 하상주차장에 대 놓고 부랴부랴 무궁화호 열차에 탑승을 하였다.
  옥천역에서 05시 43분에 탑승을 하게 되었지만 대전역에서는 06시 05분 정도에 기차가 도착을 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대전역에 도착하였는데 신호등까지 어겨서 옥천에서 대전역 뒤편의 주차장까지 달려온 시각은 30분 내외였다. 옥천에서 차량에 탑승하는 05시 43분이었지만 대전역에 온 시각이 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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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로서는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통 걸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보호자인 박 현우는 고육지책을 쓴다. 사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동년배처럼 보였다. 모자(母子)지간이었지만 함께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부부지간으로 보일 정도였다. 물론 가까이서 바라보면 얼굴에 주름이 별로 없고 성한 구석이 있는 남자가 더 젊기는 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은 머리가 훌떡 까진 대머리와 흰 머리칼이었다. 남자의 나이는 55세였지만 여자는 79세나 되는 노파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이 걸어서 산보를 나왔을 때는 전혀 달랐다. 걷는 것부터 말하는 것까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보였는데 그 두 사람은 병원에서조차 그렇게 인식할 정도로 보였다. 사람들은 어찌보면 노환과 녀 사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식이 늙어 보였었어 보아니지만 아들과

  신체적인 부분은 겉으로 봐서 정상이라고 해도 뇌에서 중추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신경 쪽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싶었다.

  아침저녁으로 걷는 운동조차 하지 않는 건 왜죠?"하고 내가 물었을 때,
   “뇌경색의 가장 큰 특징은 게을러지는 병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론이고…….” 여의사 말했다. 
  “아침저녁으로 제가 운동을 하는데……. 함께 가자고 하면 아예 펄쩍 뜁니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어머니, 운동 하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낫지 않아요!”하고 의사가 다소 엄격하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이런 환자의 경우를 모두 알고 있듯이 과장된 것처럼 따지기라도 한다. 그것을 듣고 가만히 있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은 것일까? 이번에 진료할 환자는 저돌적이다.
  “알았어요! 그런데 팔이 저리고……. 한 쪽 옆구리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처럼 싸늘한 건 왜 그래요? 소변도 자주 마렵고…….”
  “아이참, 그건 괜한데도 그래요!”
  그것을 만류하기라도 하듯이 옆에 함께 붙어 있던 노인네의 자식이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제가요! 몸이 성치 않아서 죽고 싶은 마음 밖에 없어요! 그런데 낙꿔(완치시켜)줄 수 없나요?”
  이렇게 즉각 반응을 하였는데 그런 얘기를 꺼낼 줄 몰랐다는 듯이 보호자인 아들은 민망한 듯 여의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특진을 하는 진료실은 3평 내외였고 안쪽에 책상이 놓인 반대편에 의사가 앉아 있었다. 출구와 반대편이었다. 그리고 책상 앞에는 작은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환자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올 수 있었으므로 그만큼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소파 같은 것은 없었다. 빈 공간에는 여럿이 뒤에서 서서 질료를 듣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의사가 앉아 있는 의자 뒤편으로는 병원 후문으로 들어오는 출입구 쪽이었으므로 관상수, 보도블록 등이 보였다. 천정에 켜져 있는 형광등은 유리창에서 들어오는 환한 빛에 가로 막혔으므로 켜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켜 있지 않아도 되었지만 형식적으로 켜져 있었던 것이다. 흐린 날을 제외하고는 불필요해 보였다.
  환자와 보호자가 들어와 서 있었지만 앞에서 비쳐지는 밝은 빛 때문에 의사의 모습이 그다지 자세하게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눈부신 빛에 녹아 든듯했다. 하지만 의사 편에서 보면 반대편의 환자를 바라보는 게 용이한 편이었다.

속속히 들어오는
  내가 옆에서 모친이 하는 말을 가로 막으면서 말했다.


  특진 의사는 책상 맞은편에서 여유 있는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는데 가름한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렇지만 예의 경색되고 까칠한 표정이다. 수많은 의사생도를 이끌고 응급실에 왔을 때만 해도 무슨 특별한 높은 사람으로 보였었다. 모친이 처음 이 병원에 입원할 초기만 해도 그 위상은 하늘을 찌르는 듯했었으니까? 그렇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은 통원치료로 방문한 뒤에 상태만 확인하고 소견서와 약 처방을 하는 일개 의사일 뿐이었다. 


  다만 모친에게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왜 이런 병이 생겼는가! 하는 점이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비관과 자조적인 한숨만 내 쉬는 꼴이라고 할까?

  아직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기 못하겠다는 듯이 분노를 자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고, 기회는 다 날아갔어!"

 오늘 G 한방병원에서 침을 맞고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지껄이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나는 오른 손으로 자전거를 끌고 왼손으로는 대형 우산을 받쳐 들었다. 12시가 가까워서 햇볕이 따가웠는데 걸어오는 데 조금이라도 햇빛을 가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노모는 한방 병원까지 대략 1km 가 약간 넘는 거리를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나와 막내 동생은 차례로 번갈라 가면서 자전거를 탄 체 뒤 쫒아 갔던 것이다. 함께 걸어가지 않는 것은 지팡이를 짚고 걷는 느린 발걸음을 따라 걷기보다 돌아오는 길에 그나마 빨리 오기 위해서였다.

  모친에게 걷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운동을 전혀 하지 않으려고 들었으니까?

  아, 걷는 것조차 그렇게 힘들어하고 무조건 거절을 하는 통에 침을 맞으려면,
  “내일 침 맞는 날인데……. 오늘 운동 갔다 오시면 차로 태워다 드릴게요!”
  “아니,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오늘이지 뭐……. 안 갈 테야!”
  “왜요? 운동하면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안 가!”
  “안 가면 몸이 더 나빠진데도……. 그래요.”
  “그래도 싫어! 나 요양병원엘 데…….려다 줘!”
  급기야 모친의 입에서 요양병원 얘기가 튀어 나온다. 이 말은 내가 자주 써 먹던 말이었다. 여차여차하면 그 얘기를 하면서 ‘걷기 운동’과 ‘동네 운동기구’에서 물리치료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소용이 없었다.
  “말 안 들으면 요양병원에 보낼 거예요!”
  처음에는 그 말을 하면 겁을 먹고 고분고분 따라 다녔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먼저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들 힘들지……. 요양병원에 보내 줘!”
의외의 반응이었으므로 당황했다. 왜냐하면 집에서 모시는 것과 요양병원에 처넣는 건 전혀 달랐다. (여기서 처넣는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요즘 세태의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가 치매, 뇌출혈, 뇌경색 등의 중중 장애자가 되면 즉시 요양병원에 입원 시켰다. 절대로 집에서 모시는 것을 꺼려하는 뜻이 내포하였다.)

2. 걸어서 하늘 끝까지……. 
 그녀 자신은 아들이 한방 병원에 데려다 주지 않는 게 야속하기만 했다. 또한 터덜터덜 걷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고역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여기저기 몸이 쑤셨으므로 후유증이 컸던 만큼 병원까지 대략 1.5km 거리였지만 왕복 해서 걷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아들은 뒤에서 자전거를 탄 체 졸졸 따라오기만 할 뿐 거들어 주지도 않는다.
  “엄니, 아침 저녁 운동을 나가지 않으면 저도 침 맞으러 갈 때 차로 모셔다 드리지 않을 겁니다. ”
   사실상 침맞는 비용은 얼마들지 않았다.
    천 오백원.
  그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 피해를 당하여 왔는데 사실상 혼자 걸어도 될 정도였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였지만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에 다시 밟는 과정에서 전혀 못한다고 잡아 떼었으므로 모든 걸 스스로 하도록 종용하는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였던 것이다. 또한 한방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는데 오히려 자신의 모친보다 더 건강하지 않은 관절염, 지체장애자, 허리장애자 등의 노인들이었고 그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걸어왔었다. 그런 모양을 볼 때 자신의 모친도 충분히 걸어올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침 맞으러 가려면, 스스로 걸어서 다녀 오셔요!”라고 조건을 내 걸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결정인가!
  멀울 안 듣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표현은 언제나 유효했다. 사실상 뇌경색이후 3개월 째로 접어 들면서 신체적인 특성은 정상인과 비슷해 졌다고 해도 관언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각 능력에 있어서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또한 무슨 이유에서인지 혼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심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왼 쪽편의 팔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 주질 않는 것도 한 몫을 했다.
  그녀의 다 큰 아들은 자신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조건을 내 걸었었다.
  “엄마 이젠 혼자 다니세요!”하고... 한방 병원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단서(조건)를 걸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걸어서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다. 저도 미안한지 옆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면서 차양이 넓은 우산을 받쳐 준다.
 

1. 모친의 총명한 모습.
  뇌경색이라는 병에 걸리기 이전의 모습.
  지금의 비교.
  아들은 모친이 틀니를 끼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었다. 자신은 이제 이가 부실했고 몇 개 보조로 박았는데 150만원이 들었었다. 30*5=150
  그런데 설마 틀니겠거니 했었다. 모친에 대하여 여태 아무 것도 알지를 못했다니...
  똥수발을 들면서 마르고 뼈만 남은 다리, 허벅지, 아랫배가 눈에 띄였다. 영락없는 노인네의 빈약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지 않게 보였던 것은 지금까지 가까이 지내지 않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무지에서 오는 생각인가!
  55세와 79세의 나이차이는 바로 24년이라는 띠의 차이였다. 그래서 모친과 자신은 모두 쥐띠였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전가시키게 됨으로서 불편함을 야기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사실상
2. 옥천에서는 복지관이라던가. 장애노인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였다. 그러다보니 갈 만한 곳이 없었다.
3. 미용실 주인은 계속하여 그런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요양병원에 보내기를…….
  요양원과 요양병원과는 전혀 달라요!
  조금씩 물리치료사가 있고 운동도 시켜줄 수 있는 요양병원에 보내시는 게…….
  그 뒤 모친은 요양병원에 보내달라고 계속 다그친다.
  한 가지 사실을 듣고는 계속하여 그것이 어떻다는 둥 그 얘기만 한다.
  “엄마는 요양병원에서 퇴원하였지 않아요! 그런데 자꾸만 요양병원에 가시겠다고 하면 확 넣어 드릴게요! 지금이 다도 당장……. 못할 것도 없죠!”
4. 이웃 동네 Y라는 꼬부랑 할머니가 모친의 모습을 보자,
    “아이고 저런, 어째! 우리 동네 한 사람이 똑같은 병원에 걸렸었는데 시내에 있는 모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았지 뭐예요!”하면서 호드갑을 떤다.
  그 당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있던 그녀는 이 사실이 자신을 위해서라도 된 것처럼 사실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과 같이 느껴졌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더라! 그래서 내가 그 심정이고...”
    
 5. 그 얘기를 아내에게 한 모양이다. 아내가 내게 그 얘기를 또 해 준다.
  “오늘 싱글벙글하면서 내일 요양병원에 보내겠다고 아들이 했다고...”
사실상 요양병원에 가겠다는 말은 이제 아주 노래를 부르듯 해대었으므로 나는 어제 밤에는 본격적으로 설교에 들어갔다.
  “먼저 있던 곳이 요양병원인데 한 번 더 가겠어요?”
  “그곳은 싫고...”
  “기저귀를 세 개 체우고 몸을 침대에 묶어 놓고 재우는데... 괜찮아요?”
  “싫어! 이젠 용변도 가릴 줄 아는데 설마 묶어 놓기야 하겠어?”
  “가끔씩 오줌싸고 똥 싸잖아요! 그걸 누가 참겠어요! 그리고 밤에 혼자서 용무보다가 변기구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모친은 변기구에 빠질 수 있다고 병원에 갈때마다 문 밖에 간호원을 세워 놓고 용변을 보곤 했었다. 그만큼 겁이 많아져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할 정도였다. 어떻게 사람이 그 정도에 이를까? 싶은 정도로...
  “아니, 그 것하고 요양병원에 가는 것하고 뭔 상관있어!”
  “먼저 있던 병원이 요양병원이잖아요! 그곳 엄마가 있던 침대 옆에 3년 10년이나 있던 노인네들이 차도가 있던가요!”
  “아니! 그 사람들은 1억을 병원비로 지불하였다면서도 장 그대로였어! 집까지 병원비로 충당했다고 하면서도 그곳 아니면 살 수 없는 모양이구...”
  “것 봐요! 요양 병원에 가면 낫길 랑 세, 더 악화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모든게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치료하고 운동하는 거예요!”
  “그래!”
  그제서야 말 귀를 알아 들은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생각했다고 인정하는 투였다.
  “그런데도 요양병원에 가길 원해요! 간다면 낼 당장 보내 줄께요! 다음부터는 집에 올 생각은 마시고... 내가 싫어요! 세 째도 마찬가지일테고, 또한 막내 동생도 엄마를 모시려고 할까요! 그 뒤부터는 집에 올 생각은 하시면 안 돼요! 왜냐하면 우리도 집에 모시고 싶지 않을테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내 반응이 싸늘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를 내린다.
  “그래, 알았어!”
  이 말을 뒤로하고 그 뒤부터는 절대로 요양병원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10. 모친 길들이기
11. 이사짐 싸기
  짐을 싸서 모두 차에 싣고 이사를 하게 되면서 노모는 울기 시작했다. 이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그토록 인정하기 힘들까? 싶을 정도로...
12. 모든 분위기를 일신한다. 방 안데 모든 분위기를 바꾸워 놓기 위해서...
 여기서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관념을 송두리체 바뀔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지만 스스로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처한 위치를 찾아서 그것에 맞춰 산다는 것이 그토록 눈물나는 일이었던가! 생각해 보건데 전혀 이치에 맞지 않았지만 모친은 스스로 비관하고 있어서 우울증상을 보였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복지관에 보내려고 하였지만 집과 너무 떨어져 있어서 통근 버스를 타야만 했다. 하지만 그 버스도 집과는 먼 방향으로 다녔으므로 15만원씩 든다는 개인이 제공하는 차량을 타고 나닐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사실은 복지관에서 내 거는 조건이었는데 우선 지체장애자 1,2,3급 판정을 받아야만 하였다. 물론 아직은 받지 않은 상태였던 모친으로서는 2개월을 더 기다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 등급을 받더라도 그 뒤에 더 힘든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복지관의 정원수가 정해져 있어서 대기자 명단에 올려 놓아야 했고 다른 사람이 퇴실을 하여야만 대기자 명단에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순서가 와야 지원자 명단에서 복지관 의 정식적인 회원이 될 수 있다느 사실이었다.
얼마나 많은 순서가 대기자 명단에 들어 있는지는 몰랐다.
  다만 지금의 구성요건만 해도 구성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 무척 힘들게 했다.
  이곳이 작은 군이여서 다시 도시지역과 다르다는 점은 인정을 한다. 그 예산이 많지 않았으므로 지원비가 부족한 탓이리라! 그렇지만 전에 있던 곳과 비교하는 모친의 모습을 볼 때 무척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토록 군 예산이 없을 줄이야!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동네 마을마다 마을회관이 있었고 그곳에서 노인들이 모여서 서로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이 점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노모는 그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아직도 낫설은 탓이다.

2015년 6월 23일 화요일
1. 김포 마송의 G.J 라는 곳으로 출장을 간다.
대전역에서 오전 5시 57분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2. 수원 발안의 G.L 이라는 곳에 25일 납품할 기계를 제작 중인데, 출장으로 오늘 하루를 허비할 것같다. 이런 때 직원이 한 사람 있었다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그만큼 수입이 없어서다. 하지만 이 문제를 신중이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예상되는 무인 생산 시스템을 활용하여 보다 돈 벌이가 많은 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혼자서 일을 하는 건 한계에 부딪힐테니까!

3. 막내 동생이 다녀 간 것.
  내가 막내 동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해 해 준 것도 없고 또한 받은 것도 없었지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무엇보다 병신이라고 할 정도로 용기없고 못난 것을 말할 자격도 없었지만 항시 마음에 두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이것은 무척 다른 경우였다. 우리는 형제였지만 이렇게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도무지 답을 알지 못하겠다.
  
3. 논산의 고재중에게 어제는 전화를 하였는데...
  당신은 적어도 인간적이지 않군요!
  가슴 아프게도 그처럼 인간을 매도하다니...
  그 건물이 그렇게도 값어치가 나갑니까?
  “천만원을 준비해 놓았는데 빚을 갚아야 겠습니다. 3년은 연락하지 않겠습니다. -J 건축자재- ”
나는 그렇게 문자를 보냈는데 어제의 통화가 마음에 걸려서다.
그는 계속하여 나와 대답을 회피하였다. 그리고 돈을 이천만원 요구했다. 하지만 나는 그 돈을 주고 싶은 마음이 절대로 없었다.

  대립
  그와 나는 팽팽하게 대립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창고 건물 때문이었다.
   애초에 난느 만났던 적도 없고 다만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해결 점은 창고 건물 한 채(40평)를 가지고 서로 가격을 절충하는 과정에서 주장을 관철시킬 수 없어서다. 이 문제를 나는 굉장히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창고를 사용하여야만 하는 입장에서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무척 가슴 아픈 일이다.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그가 말하는 제시 금액을 관철 시킬 수 없었다.
 
그것을 내가 내 제시한 금액인 천만 원보다 더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다. 도대체 허름한 창고 건물을 자신의 앞으로 이전을 해 놓고 그것을 터무니없이 요구하는 사람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닥쳤을 때 나는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제시한 한도에서 맞추고자 했다. 여기서 극단적인 조치는 창고를 폐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2억원을 빚을 지고 대전의 아파트를 구천만원에 내놓았고 계약금으로 천만원을 받았는데 이제 빚을 갚아야 겠습니다. -J건축자재-”
나는 두 번째 문자를 보냈다.
앞으로 빚 갚는데 전념할 생각이다.
그리고 연락도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을 한다.

인간이란?
자신의 고집을 너무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이 꺽이지 않게 되면 결국에는 힘든 시간이 계속될 수도 있었다. 우선 정신적인 부담감이 괴롭힐네티까!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 질 수 있었다.
내가 고재중에게 문자를 넣는다고 했지만 사실 우진지관 공장장에게 연락이 갔다.
  ‘아, 이런 실수가....“
  그의 전화를 받고 황당했다. 그러면서도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태도가 180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는 순간 달라진 태도에 놀랐지만 나는 급히 열차내에서 통로를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지금 열차 안 인데... 밖에 나갈께요!”
  열차의 객실 사이에는 밖에서 들어오는 계단이 있었고 화장실과 세면대가 놓여 있는 출입구쪽으로 나는 그비 걸어가면서 말했다.
  “됐습니다. 밖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왜 제게 문자 보냈습니까?”
  “예!”
  나는 깜짝 놀랬다.
  “저는 우진지관 공장장인데요!”
  “아, 제가 문자를 잘못 보냈군요!”
  그제서야 나는 실수한 것을 알게 되었다.
  문자가 엉뚱한 사람에게 갔던 것이다.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고재중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나는 잠시 생각을 한다.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갔고 전화 통화를 했을 때 다른 사람이었으므로,
  ‘서로 소통한 게 무엇보다 기뻤지만 그것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왜 그럴까? 이 사람이 내가 보낸 문자를 보고 마음이 돌아섰구나!’하고 판단을 내렸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기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기쁠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금 그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실수였고 결국에는 지인에게 관계된 사람과의 대화라는 점을 들어 나는 잠시나마 마음속의 시름(?)을 버렸었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내가 실수를 하여 다른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 사실로 잠시 사람이 뒤 바뀌어 주객이 전도된 상태에서 오해였구나?’하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모든 기쁨이 사라졌다.

  사실상 이런 종류의 상황은 휘발성이 있는 액체가 공기로 날아가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증발을 한 뒤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탓에 다시금 낙담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된 뒤에 다시 고재중이라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고 더 이상 답변과 전화를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하여 창고 건물을 내 수중에 갖고 있지 못하리라는 사실로 인하여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 재중을 악독한 놈이라고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영원이 내게 상종 못할 사람으로 바뀌지 않는 건 창고 건물이 그 이름으로 남아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어제 군청에서 등기부등본을 떼어 봤는데 역시 짐작대로 40평의 건물이 설계도와 함께 그 사람 명의로 올라가 있었다.

  4. 많은 돈을 들여서 낙찰 대금을 치렀지만 아직도 건물이 비워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함으로 일어나는 피해를 계속하여 억누르고 참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시름(?)하게 되리라는 건 자명하였다.
 
  “글세 그 문제는 이제 끝난 걸로 아는데요! 나는 사천 오백만원에 사서 손해가 막심한데 양보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천만원만 달라는 데...”
  “여보세요! 천만 원만 드리면 안됩니까?”
  “... 탈칵”
  전화가 끊겼다,.
  그래서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었고 나는 혼자서 지껄였지만 이미 전화가 끊긴 뒤였다. 그 뒤에 내게 남은 건 허무감과 배신감, 낙담, 절망... 같은 게 지속적으로 떠올려 졌었다. 이것은 아마도 그 건물을 구입할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그가 영동 법원에 나타나서 낙찰자인 내 아내에 창고 건물을 거론할 때부터 시작된 악연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떨쳐 내기 위해서는 돈이 해결책이었지만 그만큼 요구하는 액수(터무니 없는 액수)를 줄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사실상 이 문제는 해결책이 아니었다. 나는 일단은 접어둘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앞으로 다른 것에 대한 해결책을 끌어 갈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렇게 돈을 준비하여 두웠던 게 어쩌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내 딴에는 그 돈이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완강하게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고재중에게 더 이상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여기서 나는 두 번째의 방법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층으로 그 창고 건물 위에 다른 건물을 짓는 것이다.
  ‘그래, 그 창고 건물을 모두 틀어 막을 수 있도록하자!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이 들자 서서히 실천을 하여야만 할 것인데 그 시점이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을 내보낸 뒤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이 극한 상황으로 바뀌게 되면 그 위험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지상권을 고집하려는 내 의도와 맞아 떨어지게 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무력으로 확신시켜 주는 여러 가지 방법의 일환으로 단지 가장 유용한 최선책을 마련하여 대처하려는 것이리라!!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모두가 유연한 방법을 찾는 건 아니었다.
최선책에서 서로 양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립은 끝내 해결점을 찾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생각해 내는 것이다.
  여기서 여러 가지 생각 중에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좀더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부터 갚은 뒤에 일단은 숨통을 트인 상태에서 돈을 여유 있게 할 필요가 있었다.

  첫 번째의 해결은 실패였다.
  고 재중과의 원만한 해결책은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 아마도 그래서 다시금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빚을 갚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그와 상대한다는 건 전력(힘) 낭비였다. 상대하여야 맥없이 김만 빠지는 걸 왜 자꾸만 시도하겠는가!

  나는 두 번째의 전화를 끝으로 다음 단계를 시도하게 될 텐데, 그건 시간을 갖고 내가 갖고 있는 재력을 비축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우선 빚을 갚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5. 기차 안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는건 참을 수 있었지만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멀미가 일어난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마송에서 영등포역까지 88번 버스를 타고 가면서 컴퓨터를 꺼냈다. 이 시간을 그냥 허비할 수 없다는 아깝다운 생각이 강해서다. 오전에도 대전역에서 영등포역까지 열차 안에서 충돌이라는 내용으로 글을 썼었다. 그것도 졸리는 눈을 부릅뜨고...
 옥천에서 대전역까지 1톤 화물차를 운전하면서 나는 신호를 어기게 되었다. 5시 55분이라는 무궁화호 열차를 행여 놓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옥천에서 5시 10분정도에 나와서 너무 늦지 않았나 싶었고 몇 번에 걸쳐서 신호들을 무시하게 된다. 그런 노력으로 결국에는 15분전에 가양동 하상 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대전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무사히 타게 되었고...
  다시 얘기를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마송에서부터 영등포 역까지의 버스 안이다.
  옆에 중년 남자가 앉아 있고 차내에는 빈의자가 없을 정도로 꽉 찼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메리스 때문인 듯 접촉을 회피하는 느낌이다. 마스트를 쓴 사람도 더러 보였으며...
 메리스가 사람들의 교통을 막는 것같다.
모두들 보이지 않게 접촉을 피하는 듯이 자신에게 혹시나 병원균이 옮길까? 전전긍긍한 듯 거리를 둔다. 나조차 보이지 않는 이 병균에 걸린 것처럼 다리가 후둘거리며 버스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모든 활동을 중단할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렇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노트북을 꺼내 놓고 글을 쓴다.
  일개 감기가 이렇게 사람들을 단절시킬 수 있다니....

  G.J에서 도착한 뒤에 전선을 바꾸웠다. 간단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작업자들은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하루를 송두리 체 허비하게 된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진행하였다.
  1년간의 무상 A/S를 내걸었던 계약서를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1년 전이었다. 사소한 고장일지라도 나는 A/S를 나오게 된 것이고...

  모든 건 일상적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가시지 않는다. 은연중에 내게도 메르스가 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
다만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
두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 정상적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돈을 벌지 않을 수 없어서다. 또한, 그동안의 거래처와의 약속. 주변 환경, 주위 여건, 운명이라는 굴레.

  실질적으로 산다는 것은 최고의 가치였다.
살아 있음으로 해서 그것을 부정하고 메르스라는 병을 피하기 위해서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한 상태였다. 또한 그렇게 하여 지금까지의 자신이 하고 있던 모든 생활의 근간을 뿌리 체 뽑아 버리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부적절한 방법으로 사회 생활을 하는 건 그다지 바라직한 방법은 아니었다. 내게 이윤을 취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상대성을 고려하여 상호 이익이 있는 선에서 거래사 성사되여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더러 한 쪽에서 손실을 보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건 그만큼 더 큰 미래의 이익을 고려해서 저축해 주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많은 사실이 눈여겨 볼 점이었다.
  한 쪽만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강압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터무니 없는 계약은 어짜피 성사되지 않을 소지가 많았다. 그것을 들어 주기에는 너무 많은 굴복을 강요하게 되어 거래가 이루워지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나는 고재중에게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당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와 계약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꽉 막힌 상대방의 주장을 나는 억지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와 더 이상의 창고 건물에 대한 협상은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천만 원을 놓고 의견 충돌을 보지 못한 것이지만 그가 창고 건물을 이 천만 원 이나 올려서 받으려고 하는 저의에 대하여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여된 계약이었다.
  애초부터 그가 주장하여 왔던 만큼 전혀 문제삼을 수 없다는 내 생각은 옳지 않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창고였으니까? 여기서 그 부분에 대하여 진중하게 생각할 부분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더 우선적인 빚의 청산 문제가 더 급선무였으니까?
  하지만 금리가 저렴한 현재의 대출 관계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창고를 구입하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가장 고려되어야만 하는 도리가 현실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었다.
  고재중은 자신이 돈을 많이 떼인 것에 분노한다. 자신이 은행보다 더 늦게 A에게 근저당을 시켰으며 2순위로 밀려난 점 때문에 낙찰가에서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사실을 이번에는 허름한 창고 건물에서 보전하려고 한다.
  이 점 때문에 터무니없는 액수가 제시된 것이다. 그가 애초부터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협상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모두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컸다. 많은 손해가 자신의 불찰 때문이라는 사실.
  그로 인하여 결국에는 포기하게 된 상가 건물.
  그것을 억지로 다시 허름한 창고에서 보상 받으려는 심리.
  이런 모든 것이 맞물려서 최악의 상황으로 급변하였는데 그것은 낙찰자가 누구냐? 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지만 의외로 전혀 요지부동의 B씨였다. 물론 이런 경우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터무니없이 요구하는 액수에 순순히 응하리라고 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먹혀들지 않는 데는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자신이 요구하는 선에서 포기하게 되겠지만, 그런 주장을 일축할 만큼 명분이 없었다. 끝을 내기에는 아직도 아쉽기만 하였으니까!
  고 재중에게 있어서 이 명분 없는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계속 밀고 가는 수밖에...

7. 지금 이 「충동」’이라는 책에서 내용을 대략 설명해 보겠다.
  두 사람이 전화상으로 대화를 한다.
  그 둘에게 남은 과제는 C 라는 사람을 두고 A와 B와 겪게 되는 고충을 보여줄 수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B가 이 건물을 낙찰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전에 A와 C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에 경매 처분되었다는 사실이다.
  A는 이 건물에 대한 두 번째, C는 세 번째 소유주였는데 두 사람은 서로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에는 그 해결의 끝내고자 법원 경매 신청을 하게 된다. 이것은 C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이 A에게 약속한 금전적인 지급을 하지 못한데 따른 불합리함을 알고 있었지만 어쩌지 못하는 데 따른 나름대로의 최소한의 시일을 답보하고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자신도 피해자였으며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A씨가 공모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A씨가 경매에 신청을 한 뒤 얻을 수 있는 건 지금에 이르러서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그것을 누구 탓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적자가 나는 상가에 대하여 이렇다 할 대안이 없어 보였다. 그가 C에게 이 건물을 모두 넘기면서 받지 못한 액수를 근저당 설정을 했다면 이런 결과가 오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그는 C가 은행에 담보를 제공하여 융자금으 빌릴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은행에서 융통해 받은 돈을 자신에게 넘길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C는 그 돈을 자신에게 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업자금으로 돌렸고 그것을 모두 물건을 사들였다. 하지만 외상으로 판매한 대금이 회수되지 않는 초유를 결과가 발생하였다.
  어쩌면 모든 것은 짜인 각본에 따른 것처럼 나타났는데 이것이 지금은 당연한 결과라는 점이었다. 우선 C가 갖고 있는 돈이 많지 않았다. 두 번째는 경험이 없었다. 세 번째는 위기에 따른 긴 안목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패업을 하였는데 이때쯤에서는 많은 돈을 빌려 썼고 그들의 독촉에 의하여 전혀 갚을 능력이 없게 되었다.

  그의 부인이 주변에서 얻은 선입견은 참으로 많은 점을 시사한다.
  한 옷 가계 주인 왈,
  “그곳에 건축자재를 하는 상가가 있지요!”
  “예, 바로 저희집 옆인데...”
  그녀는 짐짓 모르는 체 했다.
  “그런데 참 착한 여자... 같았는데 요즘은 통 보이지를 않네요!”
  “왜요, 어떻게 그런가요?”
  “여기에서 여러 사람과 만났고 모임을 갖기도 했었는데 말이 없고 의외로 수수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보이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지요! 아니면 이사를 한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쉽고...”
  “부도가 났습니다. 모두 말아먹고 집은 경매 처분되었는데 그 매매 물건을 제가 샀고요!”
  그녀는 이 사실을 모두 밝혔다. 그래서 확실한 내용을 말해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예!”
  무엇보다 놀란 것은 옷 가게 주인이었다. 하루아침에 주객이 전도된 입장이 어떠할까? 하고 뇌리에 떠올랐다. 그런 감정은 순전히 당사자의 심정을 그만큼 생각하게 되어서였다. 그리고 눈앞에 상황이 바뀐 새로운 건물의 주인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렇지만 E씨는 사실 빚까지 져가면서 많은 돈을 처발랐지만 아직도 권리 행사를 못하는 게 가슴 아팠다. 그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핀잔을 받기 일쑤였고...
  하지만 이런 내용을 숨긴 체 옷 가게 주인에게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는 게 좋았다. 그렇게 해서 은근히 부러움을 사는 건 무척 행복하였다.

8.  B 씨는 하천부지를 해결할 의향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천세를 내는 사람을 만나보려고 자전거를 타고 건물 뒤편으로 가 보았다.
  “집 뒤에 있는 밭을 일구는 사람이예요!”
  C가 그렇게 소상하게 얘기를 해 주웠으므로 찾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서다.

9. 영등포역에서 12시 18분에 도착하는 열차에 탑승을 한다.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쓰는데 너무도 잘 써져서 놀란다. 그러면서 자신이 공장에서 기계 제작 일을 하며 시간을 내지 못하였던 사실에 대하여 무척 낙담을 한다. 본업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쫒기 듯 살아가는 게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선이 최선책이었다. 글은 전혀 생계 수단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여기서 내 애환이 깃들어 있었다. 적어도 그로 인하여 시간을 갖지 못하였는데 이렇게 출장을 나오게 되면 열차, 버스 안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많을 글을 쓰기 때문이다. 적어도 굴을 쓰는 순간만큼은 내 세상이었다.
  하행선 무궁화호 열차의 커튼을 열면 밖에 상황이 너무도 어지럽게 느껴진다. 글을 쓰는 중에는 오히려 밖에 상황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닫고 글에 취하듯이 자판을 두드린다. 잠이 오려고 졸음이 눈꺼풀에 내려 앉았다. 아침에 4시 40분에 깨어 5시 55분 열차를 대전역에서 탈 때까지 그 시간에 졸음이 끊임없이 엄습하였지만 참았던 것이다. 알람 소리를 듣고 처음 깨었을 때 엄습해오는 피로감. 그 전에 밤 11시쯤에 잠자리에 들었었다. 그렇지만 도중에 창문을 열어 놓고 자서 그런지 두어 차례 잠에서 깨었었다. 그 탓일까? 피곤이 엄습한다. 다시 잠들었지만 그 뒤 10분 만에 깨었었다. 기차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열차표를 인터넷으로 미리 끊어 놨기 때문이다.
  전에 피곤으로 잠들었다가 그만 열차를 놓쳐 버리고 말았는데 그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였었다. 돈을 들여서 미리 끊어 놓은 열차표가 어쩌면 구매해 놓고서 승차하지 못하게 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런 입장을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잠들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일어 났고 냉장고에서 아내가 준비해 둔 녹즙을 한 컵 따라 마셨다. 그것이 아침이었다.

10. 군서 산밭에서...
  (1) 이곳에 요새를 짓는 것.
  (2) 짐승들에게 피해를 막기 위해 시작한 시도였다.
  (3) 하지만 상황을 결코 좋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대안은 태양광과 그것을 활용한 시설물의 구축이었고 점차 그에 따른 건축물을 만들기에 이른다.
  (4) 농사를 하면 이윤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이윤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농사와의 접목이 필요한 입장에서 계속하여 연구를 한다. 기계 시설을 갖춰서 부가적인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는 점이 여기에 남게 된다.
  (5) 산밭에서의 농사 일.
  이곳에서 잘 되는 품목.
  한편으로는 이런 여건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고려해볼 때 적어도 생각을 다시 고쳐 먹게 된다.

처음에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이곳에 난공불락의 성을 만들었는데 동물 출현을 막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다. 특히 고라니와 멧돼지를...
그 피해의 극심함에 대하여 특단의 조치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막을 것인가!
내가 염려스럽다고 한 것.
그리도 두 번재로 바꾸게 된 여러 가지 조치들.
나는 농사를 짓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동물의 침입을 막을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울타리와 방호벽을 설치하여 방범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새로운 숙제.
기술적으로 새로운 도전이었다.
아무렴 인간이 동물의 출현에 대하여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변을 변화 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신기하게도 그 모든 것을 나는 극단적인 방법을 찾아서 해결하려고 했다. 내가 염려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건 절대로 디런 방법은 아니었다. 돈을 들이지 않고 육체적인 노력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무엇보다 많은 점들이 곤란할 정도였다. 왜냐하면 산밭에 요새를 만들려면 여러 가지 환경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문제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극한 상황에서 내가 유리한 점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그 대안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돈을 들이지 않고 어떻게 해서 이 점을 극복하는냐? 하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내가 갖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 뚜렷하게 목표를 갖기에 이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알아내는 데 많은 부분에 있어서 새로운 점들을 만들어 내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