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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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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의 피부병

2017.02.07 01:13

文學 조회 수:17

내일을 다시 모친 때문에 충남대학병원에 가야만 했다.

1월 24일에 두 번째 충대병원에 처방전을 받기 위해서 갔다 왔으니까 내일로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모친의 상태를 확인하여야만 했으므로 데리고 갔다 왔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아내와 내가 가게 되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모친으로 인해서 번거롭게 자식이 다녀와야만 하는 게 무척 괴롭다. 아내 혼자서 가지 못하여 내가 따라가는 것도...

 

  모친은 함께 가지 않았지만 아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므로 내가 따라 가야하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모친에게 줄 처방전을 받기 위해서다. 옥천에서 12km 의 거리를 가기 위해서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버스를 타고 가게 되면 그보다 더 많이 걸린다.

 

  모친의 상태를 찍은 사진을 스마트폰에 담아가지고 간다. 

  진행되는 환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한 뒤에 처방전을 받게 되는데 의사는 젊은 나이에 키가 크고 몸집이 매우 비대했다. 피부과에서 특진을 하는 박사들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겼는데 그것은 물집이 생긴 부위를 바라보는 눈빛이 호감이 가지 않았었다. 거대한 몸집에 얼마나 진료를 잘할까? 하는 비웃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태가 계속 호전되고 있었으므로 신뢰감이 쌓였다. 모친이 그나마 더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통했던 모양이다. 사실 피부병으로 죽기야 하겠는가.

 

 

1. 모친의 병명

  모친 때문에 충남대학병원에 가야만 한다.

  병명은 "유천포창"

  2017년 1월 24일에 두 번째 충대병원에 처방전을 받기 위해서 갔다 왔었다. 모친은 가지 않고 대신 아내 핸드폰으로 물집이 생긴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 가게 되는데 직접 찍은 게 아니고 요양병원 간호사가 보내온 사진이었다.

  내일은 세 번째 병원 진료였다. 하지만 12km 거리의 충대병원까지 차를 타고 운행하여야만 했으므로 부득히 내가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장롱 면허증이었으므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모친을 데리고 매번 진료를 받으러 갈 수 없었으므로 보호자만 가서 처방전을 받게 되는데 필요한 요구조건은 사진으로 상처부위를 찍어 가야만 한다는 조건이 제시되어 있었다.

  두 번째 병원 진료부터는 아내가 대신 가게 된 이유다. 그리고 이번이 세번 째였다. 환자는 요양병원에 있었지만 보호자가 처방전을 받아서 필요한 약과 바르는 약품을 구입하여 요양병원에 주고 와야만 했으므로 그것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9시의 진료가 첫 번째로 예약을 해 놓았으므로 가급적이면 빨리 갔다올 수 있었으므로 그다지 문제될 게 없었다. 대신 빨리 일어나서 1기간 전에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내와 내가 함께 가게 되므로 오전은 공장에 출근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것 때문에 종내 마음이 무겁다.

  요양병원에 모신 모친에게 '유천포창'과 등에 물집이 생기게 된 원인이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라는 사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모친으로 인해서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내 혼자서 갈 일은 내가 따라가는 것도 그렇고...  다만 모친은 함께 가지 않았도 되었다. 내가 공장에 출근을 하여 일을 하는 동안 아내가 혼자 갔다오면 좋으련만 운전을 하지 못하므로 내가 따라 가야하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모친을 위해 대신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서 약을 구입하기 위해서 환자를 데리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배려는 무척 고마웠다. 


 옥천에서 12km 의 거리를 가기 위해서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버스를 타고 가게 되면 그보다 더 많이 걸린다. 그러므로 9시까지 시간을 맞추지 못할 수도 있었으므로 1톤 화물차를 타고 갔다올 수 밖에 없었다.

 

 의사는 젊은 나이에 키가 크고 몸집이 매우 비대했다. 피부과에서 특진을 하는 박사들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겼었다.

  좀 비만인 사람에게 느끼는 선입감은 게을러 보인다는 점일 것이다. 의사는 인턴처럼 보였다. 물집이 생긴 부위를 바라보는 눈빛이 호감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1미터 80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몸집에 걸음 걸이가 매우 무거워 보였으며 팔굽은 의사 까운에 걸쳐 있었고 그 둔한 행동은 계속하여 가위로 진물이 노랗게 나서 물집 부위를 덮고 있는 거느와 반창고를 뜯어 내고 물집이 터진 발등과 아직 물집이 살 위로 방울처럼 올라와 았는 발가락 사이부터 손가락 사ㅣ까지 모두 확인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 보면서 직접 확인하기까지 했었다. 두명의 여성 간호사가 함께 병실에 들어와서 거들었고 이내 확인만 한 뒤에 밖으로 나갔었다.

  그것이 첫 번째의 진료였었다.

  두 번째는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운전기사처럼 밖에서 기다렸었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으므로 그냥 아내에게 맡겨 버리고 대학병원 주변으로 산보를 하기 일쑤였다.

  병원에 와서 기다리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운동삼아 걷는 것이다.

  모친의 상태가 계속 호전되고 있었으므로 신뢰감이 쌓였다. 모친이 그나마 더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통했던 모양이다. 사실 피부병으로 죽기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