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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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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즈음하여... (2)

2016.09.14 00:54

文學 조회 수:26

추석 명절.

장남으로서의 역활.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모두가 우리집으로 모여드는데 그 중에 우리 가족과 형제, 그리고 제수씨들과 그 자식들이 모이게 된다.


 아무래도 내가 장남으로서 모든 것을 주관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음식값으로 오십만원을 내 놓았았지만 아내는 그 돈도 적다고 했다. 그리고 둘 째와 막내가 각각 10만원씩은 줄테지만 아내가 음식 장만을 하느라고 드는 돈은 내가 다 되는 것이다.


명절이라고 하면 돈 쓰는 게 어디 그뿐일까?

조카들에게 세배 돈을 주기 위해 또한 큰 애들에게는 5만원씩을 주웠었다.

특히 둘 째 동생의 자식들에게는 불쌍하다고 해서 유독 더 신경이 쓰였다.

이제 우리 애들은 모두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그나마 돈은 주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세배돈을 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큰 아버지의 위상이었다.


 아직은 내가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는 나름대로의 특별한 위치.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 돈을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아이들은 너무도 과분한 모습이었다.

그만큼 지금은 형편이 나았다고 할까?

  그것은 내게 충분한 명분이 있었기에 아마도 우리집으로 모여드는 형제들과 조카들에게 내가 갖고 있는 위상이 높았지만 다음 세대까지 그런 명목이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종가집 장손이었지만 부친이 너무도 가난하고 못 살았으므로 그런 위상에 걸맞게 지위를 갖지 못하였던 건 아마도 돈이 없어서였다.

  사실상 지금은 종친회에서 떨어져 나와서 우리 가족들만 별도로 우리집으로 모이고 있었다.

지금은 많은 변화가 모든 걸 뒤바꿔 버렸다.

  모친이 요양병원에 가게 된 이후 불과 1년이 되었는데 그 빈자리는 너무도 커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요양병원에 데려다 놓은 이후로 전혀 거동을 못하시기 때문에 명절에 집으로 올수도 없었다. 아마도 오래 사시지 못할 정도로 나날이 허약해져서 이제는 누워 지낼 정도로 바뀌어 버렸으므로 모든 게 당신이 계시지 않은 것으로 지워진 것처럼 변해 버렸던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되기까지 내 책임이 컷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속이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부정를 하고 원망을 한 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친이 요양병원에 스스로 들러 가겠다고 할 때 나는 급구 만류했었다.

  "이제 요양병원에 가면 집에는 영영 못오게 되요? 그래도 가겠어요?"

  "응!"

   "정말로 가는 거죠!"

  나는 내 귀를 의심해서 다시 한 번 물어 보았다.

  "그래, 요양병원에 보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