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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생각은 자꾸만 커져서 머리 속을 가득 체워 놓는다. 결국 모두 토해 놓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 된다. 그렇다면 이 때 필요한 만큼 조정을 하자! 우선 그 내용을 조합하여 엣세이 형식으로 쓰면 어떨까? 또한 그것을 나중에 조금 수정하면 책이 될테고... 그래, 이곳을 삶이 충만한 얘기체 형식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삶의 엣세이 (essay)
청량리에서...
2015.09.17 15:36
1. 보따리 장사꾼.
깐 거요! 안 깐 거요?
그거 깔려다가 죽는 줄 알았는데...
아녀요? 잘까져요. 지금은, 그런데 조금 더 지나면 안 까져요!
근데 그걸 몇 관여요?
네 관인데...
한 관에 이천 오백원씩이명 돈 십만원은 받을까 그래요.
한 관에 몇 키로에요?
사 키로요. 대충없어요.
생물은 그렇고 마른 건 육키로고...
농사꾼들에게도 근수를 따지는 게 있는가 보다.
도라지를 가지고 주고 받는 얘기다. 새벽장이 열리는 대전역전 앞에서 물건을 팔러 나가는 노인. 사실상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마대자루에 멜빵을 달아서 등에 짊어지고 가겠다고 나서서 돈 십 만원을 보고 장사를 한다는 거였다. 원산지의 사람. 그렇지만 이 사람을 대전역에서 보았다면 어땠을까?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대전역 앞에서 열리는 도깨비시장에 모여든다. 그런데 오늘은 옥천역에서 원산지의 사람을 만난 것이다. 우연히 그 시장을 보았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서 였을까? 대전역에서 나와 그 장이 열리는 시간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시간에 그곳에 가보지 못하였는데 항상 북적되던 시장의 전경은 택시 승강장으로 바뀌어 있었으므로 전혀 그 느낌을 갖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사람을 플랫폼에서 보게 된 것이다.
얼굴은 구리빛으로 탔고 깡마른 체구에 턱이 뾰족한 세모꼴의 얼굴이다. 말씨는 무던하고 순박한 티가 묻어 났는데 가격을 말할 때 특히 그랬다.
옆에서 다른 아주머니 왈,
“너무 싸게 팔지 마세요! 그리고 주변에 슬쩍 돈도 안 주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으니 조심하고요.”
하고 연신 주의를 준다. 그녀 역시 보따리 장사꾼이었다. 짐이 많아서 나중에 말하는데 호박이라고 했다. 늙은 호박이 아닌 작고 아담한 애호박. 많은 이들이 이들처럼 농사를 져서 장사를 하는 듯하다. 내가 작년에 팥을 농사져서 팔지 못한 것에 비한다면 이들은 그나마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듯싶었다.
2, 밤에 모친이 오줌을 쌌다. 아침에 일어나서 서울로 출장을 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종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중략-
7. 여기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비교적 빠른 판단력이다.
어제 청주로 출장을 나갔을 때, 느끼는 피곤함은 아침에 노모와 똥을 눟는 것 때문에 시강이를 벌였었다.
내가 잠에서 깬 것은 끙끙 거리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일주일 내내 변을 보지 못한 모친이 드디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기 위해 내 질르는 비명.
똥고멍에 막하 있는데 나올 생각을 안 해
하지만 나는 벌떡 일어났다.
엄청난 피로감. 어젯밤에 1시에 잤고 새벽 6시에 일어 났으니 불과 5시간 정도 잠을 자지 않았다는 표시가 몸에서 피곤함으로 나타내었다. 두 눈이 감기는 것처럼 따갑고 머리가 무겁다. 그렇지만 화장실 앞에 뒤의 병원용 환자의 측면 난간대에 엉덩이를 받히고 침대 위에 놓여 있던 대나무로 만든 등을 긁는 효자손을 집어 든다.
나오지 마
나는 경고를 하듯이 나무를 집어 들고 벽과 쇠로된 침대 난간대를 쳤다.
모친은 그런 와중에서도 벌떡 변기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나는 재빨리 바지를 벗겼다. 똥을 쌀까 싶어서다. 이런 건 언제든지 바지 속ㅇ로 똥덩어리가 풍덩 빠지기 마련이었다. 열린 똥구멍과 들 열린 똥구멍의 차이. 일주일 동안 막혀 있던 항문이 열리는 소리가 모친의 입에서 흘러나오기까지 열심히 기도(?)했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는 변비약 대신 상 위에 놓여 있는 보리순 가루를 물에 개어 먹게 했고 포도, 바나나를 먹였었다. 극심한 변비였다. 하지만 변을 보고 난 뒤에는 똥이 너무 묽어도 삐질삐질 항문 밖으로 새어 나왔고 그론 인해서 스스로 제어를 하지 못하여 옷을 버렸으므로 오히려 변비일 때보다 더 주체를 하지 못한다. 바지를 버리기 일쑤.
어떻게 사람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까?
중풍이라는 병으로 인하여 모친이 겪는 세계는 지각이 없었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였고 전혀 인간적인 배려가 제어된 체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똥을 싸고 그것을 묻혀서 방안을 휘젖고 다니기 때문에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다. 그냥 침대에 앉아서 똥을 싸기도 했던 모습에서 배제된 모습은 인간이 아닌 똥싸는 동물이었다. 아무곳에서나 그냥 똥을 싸고 그것을 묻힌 체 돌아 나녔으니까?
일주일째 변을 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어제 화장실에서 끙끙거리는 게 어찌보면 신기할 정도로 대견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함께 기거한 이 불청객으로 인하여 모든 게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지내는 나로서는 그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에 똥을 눟고 온통 방안에 똥칠을 할 경우 아내에게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다.
갔다 버려! 함께 못살아! 내가 왜 노인네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하지...
그리고는 며칠 끙끙 앓아 누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함께 일하는 기계 제작에 관한 일도 그만 두게 되었으므로 그 피해가 막심하였는데 그런 시위는 순전히 내게 돌아오는 몫이 되어 왔었다. 연례 행사처럼... 나는 아내로부터 원망을 산다. 중풍에 걸린 노모를 모신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1년여 동안 엄청난 고충을 감내하여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내는 지금의 환경에 있어서 자신이 저질러 놓은 사건을 무마하려 할테지만 내 생각은 그것을 꼬투리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겪는 고충은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것이 비단 내게 있어서 좋지 않은 경우임에 틀림없었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모친이 아내와 내 삶속으로 파고 들었는데 그것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을 하였다. 아마도 그로 인하여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우리는 별거 아닌 별거 생활 중이었다. 도저히 모친과 함께 잘 수 없다는 결론이었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잠을 자는 게 예민하였던 아내.
8. 아내가 B 건물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9. 지난 날 모친이 내게 소리치고 달달 볶던 모습.
10. 어렸을 때 이불을 덮어 주면서 물끄러미 얼굴을 바라보곤 하던 기억.
그런데 지금 밤마다 내가 모친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클 때의 경우는 불과 몇 년 내외였을 것이다. 소변과 대변을 가리지 않던 시기가 있었을 것인데 지금은 정 반대가 된다.
11. 목적지인 양령시장 골목의 갑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이곳 청량리 쪽의 약제상회가 도로 양 쪽으로 즐비하다. 매번 와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기계가 놓여 있는 가게까지 가는 동안 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청량리역을 한 정거장 못간 곳에서 내렸다. 그리고 지하철 밖으로 나가서 목적지까지 걷는 동안 인도변까지 점령한 장사꾼들 속을 걷는 느낌. 이렇게 한쪽으로는 상가, 다른 쪽으로는 차량이 통행하는 도로를 등에 지고 인도변을 향하여 장사를 하는 사람과 진열한 상품을 보면서 목적지까지 걷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이 많은 한약제들을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판매할 것이 아닌가!
먼저 왔을 때 “갑” 씨는 내게 약제상들이 예전보다 많이 죽었다는 말을 해 줬었다. 그리고 판매가 되지 않고 썩은 한약제들이 창고에서 썩어가는 것을 치우느라고 그 옆의 고물상에서 리어커 쟁이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오쨌튼 오늘은 전에 왔을 때보다 일찍 기계를 고쳤다. 저항이 나갔고(위에서 바라 봤더니) 전선이 좋지 않아서 새로 만졌었다.
눈썰미가 있는 주인.
내가 인수를 한 “한” 씨에게 구입한 기계였다. “한” 씨가 죽고 그 바통을 내가 이어 받은 내가 우연히 “코오롱” 이라는 사람에게 중간에서 연결이 되어 알게 된 셈이지만 벌써 두 번째 출장을 오게 된 것이다.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기계가 고장이 나서 고칠 수 없었던 불편함으로 인하여 무척 고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기계를 고치고 나자 20만원을 주는데 10만원만 받고 말았다.
12. 생각 모음 (179)
1) 내 몸의 상태변화
ㄱ. 이에 풍치가 온 것. 빼낸 이을 보충하지않았고 어금니가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썩고 흔들렸으므로 딱딱한 음식을 씹을 때마다 이가 아팠다.
ㄴ. 치질이 있어서 항문이 빠져 나왔을 때 걸어 다닐 때마다 쓰리고 아팠다. 요즘은 만성이 되어 그냥 있어도 아프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화장실에서 손가락으로 밀어 넣고 비누칠해서 손을 닦는 게 예사였다.
ㄷ. 머리가 뜨겁고 열이 나는 문제. 혈압이 상승하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ㄹ. 나이가 들면서 발생되는 여러가지 신체적인 문제점들.
ㅁ. 예전보다 보다 능률적이지 않는 점.
아래 내용을,
엣세이 (200)
로 풀어 놓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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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따리 장사꾼.
깐 거요! 안 깐 거요?
그거 깔려다가 죽는 줄 알았는데...
아녀요? 잘까져요. 지금은, 그런데 조금 더 지나면 안 까져요!
근데 그걸 몇 관여요?
네 관인데...
한 관에 이천 오백원씩이명 돈 십만원은 받을까 그래요.
한 관에 몇 키로에요?
사 키로요. 대충없어요.
생물은 그렇고 마른 건 육키로고...
농사꾼들에게도 근수를 따지는 게 있는가 보다.
도라지를 가지고 주고 받는 얘기다. 새벽장이 열리는 대전역전 앞에서 물건을 팔러 나가는 노인. 사실상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마대자루에 멜빵을 달아서 등에 짊어지고 가겠다고 나서서 돈 십 만원을 보고 장사를 한다는 거였다. 원산지의 사람. 그렇지만 이 사람을 대전역에서 보았다면 어땠을까?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대전역 앞에서 열리는 도깨비시장에 모여든다. 그런데 오늘은 옥천역에서 원산지의 사람을 만난 것이다. 우연히 그 시장을 보았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서 였을까? 대전역에서 나와 그 장이 열리는 시간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시간에 그곳에 가보지 못하였는데 항상 북적되던 시장의 전경은 택시 승강장으로 바뀌어 있었으므로 전혀 그 느낌을 갖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사람을 플랫폼에서 보게 된 것이다.
얼굴은 구리빛으로 탔고 깡마른 체구에 턱이 뾰족한 세모꼴의 얼굴이다. 말씨는 무던하고 순박한 티가 묻어 났는데 가격을 말할 때 특히 그랬다.
옆에서 다른 아주머니 왈,
“너무 싸게 팔지 마세요! 그리고 주변에 슬쩍 돈도 안 주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으니 조심하고요.”
하고 연신 주의를 준다. 그녀 역시 보따리 장사꾼이었다. 짐이 많아서 나중에 말하는데 호박이라고 했다. 늙은 호박이 아닌 작고 아담한 애호박. 많은 이들이 이들처럼 농사를 져서 장사를 하는 듯하다. 내가 작년에 팥을 농사져서 팔지 못한 것에 비한다면 이들은 그나마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듯싶었다.
2, 밤에 모친이 오줌을 쌌다. 아침에 일어나서 서울로 출장을 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종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3. 청주로 출장을 갔던 어제의 기분. 약간의 두통과 함께 찾아온 멀미 증세. 머리를 만져보니 불덩이처럼 뜨겁다. 그려면서 미친 것처럼 치닫고 있는 두통과 그에 따른 말을 할 때 느껴지는 고혈압증세. 말을 하는 게 완구점의 인형처럼 태엽을 감는 것처럼 힘들다. 그래서 태엽을 감던 손을 놓고 다시 인형을 움직이게 하여야 한다.
4. 중화요리 집으로 세들어 오는 사람. 그를 보면 의외로 느낌이 측은하게 바뀐다. 그렇게 힘든 식당을 운영하면서 돌아오는 수입을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돈을 벌지 못했다고 한다.
5. 우리 입장에서는 지하실과 1층에 세를 놓는다는 중차대한 목적 (?)을 내세웠지만 그에 비한다면 B라는 사람은 너무도 힘들고 돈을 벌지 못하여 4번이나 사업 실패를 겪었다는 것인데... 알 것 같았다.
6. 점점 기계 납기일이 촉박하게 되어 간다.
3개월을 두고 계약을 했지만 사실상 그렇게 무의미하게 지나가 버린 탓에 나는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었다. 어제는 청주, 오늘은 서울로 출장을 나가게 되었으며 계속하여 기계 납품이 늦춰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 그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촉박하게 되는 납기일. 그것은 순전히 지금도 본작업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로 지속되는 이유가 묻어 있었다.
NC 완정 자동 절단기.
지금 납기가 지연되는 지관절단기 중고 수리.
여기서 10일이면 끝내리라고 생각했던 예상을 뒤엎고 17일까지도 완성을 못한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너무나 느린 진도. 그로 인해서 납기가 한정없이 지연되고 있었는데 필요 이상으로 다른 작업에 매달리는 탓이었다. 왜그럴까? 자꾸만 작업 속도가 늦어지는 이유. 아무래도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시간을 빼앗기는 탓이다.
7. 여기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비교적 빠른 판단력이다.
어제 청주로 출장을 나갔을 때, 느끼는 피곤함은 아침에 노모와 똥을 눟는 것 때문에 시강이를 벌였었다.
내가 잠에서 깬 것은 끙끙 거리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일주일 내내 변을 보지 못한 모친이 드디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기 위해 내 질르는 비명.
똥고멍에 막하 있는데 나올 생각을 안 해
하지만 나는 벌떡 일어났다.
엄청난 피로감. 어젯밤에 1시에 잤고 새벽 6시에 일어 났으니 불과 5시간 정도 잠을 자지 않았다는 표시가 몸에서 피곤함으로 나타내었다. 두 눈이 감기는 것처럼 따갑고 머리가 무겁다. 그렇지만 화장실 앞에 뒤의 병원용 환자의 측면 난간대에 엉덩이를 받히고 침대 위에 놓여 있던 대나무로 만든 등을 긁는 효자손을 집어 든다.
나오지 마
나는 경고를 하듯이 나무를 집어 들고 벽과 쇠로된 침대 난간대를 쳤다.
모친은 그런 와중에서도 벌떡 변기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나는 재빨리 바지를 벗겼다. 똥을 쌀까 싶어서다. 이런 건 언제든지 바지 속ㅇ로 똥덩어리가 풍덩 빠지기 마련이었다. 열린 똥구멍과 들 열린 똥구멍의 차이. 일주일 동안 막혀 있던 항문이 열리는 소리가 모친의 입에서 흘러나오기까지 열심히 기도(?)했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는 변비약 대신 상 위에 놓여 있는 보리순 가루를 물에 개어 먹게 했고 포도, 바나나를 먹였었다. 극심한 변비였다. 하지만 변을 보고 난 뒤에는 똥이 너무 묽어도 삐질삐질 항문 밖으로 새어 나왔고 그론 인해서 스스로 제어를 하지 못하여 옷을 버렸으므로 오히려 변비일 때보다 더 주체를 하지 못한다. 바지를 버리기 일쑤.
어떻게 사람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까?
중풍이라는 병으로 인하여 모친이 겪는 세계는 지각이 없었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였고 전혀 인간적인 배려가 제어된 체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똥을 싸고 그것을 묻혀서 방안을 휘젖고 다니기 때문에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다. 그냥 침대에 앉아서 똥을 싸기도 했던 모습에서 배제된 모습은 인간이 아닌 똥싸는 동물이었다. 아무곳에서나 그냥 똥을 싸고 그것을 묻힌 체 돌아 나녔으니까?
일주일째 변을 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어제 화장실에서 끙끙거리는 게 어찌보면 신기할 정도로 대견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함께 기거한 이 불청객으로 인하여 모든 게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지내는 나로서는 그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에 똥을 눟고 온통 방안에 똥칠을 할 경우 아내에게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다.
갔다 버려! 함께 못살아! 내가 왜 노인네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하지...
그리고는 며칠 끙끙 앓아 누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함께 일하는 기계 제작에 관한 일도 그만 두게 되었으므로 그 피해가 막심하였는데 그런 시위는 순전히 내게 돌아오는 몫이 되어 왔었다. 연례 행사처럼... 나는 아내로부터 원망을 산다. 중풍에 걸린 노모를 모신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1년여 동안 엄청난 고충을 감내하여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내는 지금의 환경에 있어서 자신이 저질러 놓은 사건을 무마하려 할테지만 내 생각은 그것을 꼬투리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겪는 고충은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것이 비단 내게 있어서 좋지 않은 경우임에 틀림없었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모친이 아내와 내 삶속으로 파고 들었는데 그것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을 하였다. 아마도 그로 인하여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우리는 별거 아닌 별거 생활 중이었다. 도저히 모친과 함께 잘 수 없다는 결론이었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잠을 자는 게 예민하였던 아내.
8. 아내가 B 건물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9. 지난 날 모친이 내게 소리치고 달달 볶던 모습.
10. 어렸을 때 이불을 덮어 주면서 물끄러미 얼굴을 바라보곤 하던 기억.
그런데 지금 밤마다 내가 모친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클 때의 경우는 불과 몇 년 내외였을 것이다. 소변과 대변을 가리지 않던 시기가 있었을 것인데 지금은 정 반대가 된다.
11. 목적지인 양령시장 골목의 갑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이곳 청량리 쪽의 약제상회가 도로 양 쪽으로 즐비하다. 매번 와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기계가 놓여 있는 가게까지 가는 동안 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청량리역을 한 정거장 못간 곳에서 내렸다. 그리고 지하철 밖으로 나가서 목적지까지 걷는 동안 인도변까지 점령한 장사꾼들 속을 걷는 느낌. 이렇게 한쪽으로는 상가, 다른 쪽으로는 차량이 통행하는 도로를 등에 지고 인도변을 향하여 장사를 하는 사람과 진열한 상품을 보면서 목적지까지 걷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이 많은 한약제들을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판매할 것이 아닌가!
먼저 왔을 때 “갑” 씨는 내게 약제상들이 예전보다 많이 죽었다는 말을 해 줬었다. 그리고 판매가 되지 않고 썩은 한약제들이 창고에서 썩어가는 것을 치우느라고 그 옆의 고물상에서 리어커 쟁이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오쨌튼 오늘은 전에 왔을 때보다 일찍 기계를 고쳤다. 저항이 나갔고(위에서 바라 봤더니) 전선이 좋지 않아서 새로 만졌었다.
눈썰미가 있는 주인.
내가 인수를 한 “한” 씨에게 구입한 기계였다. “한” 씨가 죽고 그 바통을 내가 이어 받은 내가 우연히 “코오롱” 이라는 사람에게 중간에서 연결이 되어 알게 된 셈이지만 벌써 두 번째 출장을 오게 된 것이다.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기계가 고장이 나서 고칠 수 없었던 불편함으로 인하여 무척 고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기계를 고치고 나자 20만원을 주는데 10만원만 받고 말았다.
12. 대전에서 전철을 개통했는데 2호선은 논산 쪽으로 연결할 모양이다. 이곳 옥천은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경부선 쪽으로 놓여야만 마땅할 터인데 오히려 다른 곳으로 발전하는 이유는 이곳 옥천이 수자원공사의 보호지역이라는 점이었다. 대전에서 사용하는 막대한 양의 수돗물은 대청호에서 공급하는데 상수원 공급지인 이곳 옥천, 영동쪽은 개발이 그만큼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거기다가 공장지대가 들어설 수 없는 탓에 인구는 매년 1000명씩이나 감소하는 추세였으니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많은 쪽으로 전철이 놓여지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13. 다음에 갈 곳은 역곡이었다. 역곡에 있는 가게. 부인이 교통사고로 다쳤는데 중퇴에 이르러서 도저히 치유가 불가능하리라고 여겨 졌던 1년 전의 상태에서 이제는 조금씩 물리 치료를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남자 또한 과거 병력이 있었다. 뼈가 녹아 버리는 탓에 팔목과 다리의 힘이 없어서 불구자처럼 비틀 거리면서 걸었다. 그런 상태로 가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튼 이들이 불행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여자의 교통사고 이후 가게를 비웠던 탓에 아예 운영하지 않고 접는다고 했을 정도가 되었지만 2년이 흐른 지금은 많은 점이 바뀌는 것같다.
50대 정도의 중년 여자의 치유가 그만큼 신체적인 불편함을 야기했을 정도였지만 모든 것은 여자에게 의지하여 가게를 운영하여 왔던 그 사람에게 있어서 믿는 건 순간적으로 흩어진 가족력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의 그들에게 어떤 결과를 얻게 하였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차선책은 그들이 그 삶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 나가느냐? 하는 관건이었다. 그것은 들판에 핀 야생화처럼 나의 뇌리에서 사라져 갔었다. 아무래도 여자가 드센 편이었고 남편에게 등한시한 게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사고 이후 남편의 소중함을 깨닫지 않았을까? 불행함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여러 가지 궁금한 사항들이 물믿듯이 밀려든다. 어떻게 해서 지금의 사태가 일어났고 그 관계를 나는 몇 년이 지난 뒤에 다시 찾아 가게 된 것이다.
14. 역곡의 “을” 씨 전화가 와서 찾았지만 가게는 다른 사람이 3개월 전에 인수한 모양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부에 시설을 다르게 꾸며 놓았다. 기계가 입구 쪽에서 오른 편에 있었지만 지금은 왼 쪽 편으로 옮겨 놓았고 턱받이도 바닥 철판으로 적록하여 녹색 페인트로 칠해진 상태였다. 그렇게 꾸면 놓아서 전에 보다 한결 나아 보인다.
내가 그토록 마르고 닳도록 충고를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가게를 넘긴 것은 왠지 모르게 배신을 당한 것 같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불구자인 그 몸으로 아내를 간병하였지만 가게를 운영하지 못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모든 사실이 그의 언변으로 내게 말해 주지 않고 내가 직접 보고 느낀 점을 이곳에 쓰는 것이지만 사실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실체적인 변화였다. 그가 장애자의 몸으로 가게를 운영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였으리라! 여기서 전화를 받고 말하는 것을 듣자 그 음성이 예전과 다르게 기운이 없다는 점이었다.
어제 만난 중화요리집을 하겠다는 B 씨. 그는 내게 한없이 요구만을 늘어 놓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만 세입자(반대)를 위해 양보만을 할 수 없지 않은가!
우선 식당이 들어 서는 것에 대하여 나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만큼 구조 변경을 많이 시켜야만 했으므로 오히려 더 불필요한 건물의 구조변경과 새로 요구하는 부속 건물을 증설해주워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무척 번거로웠다. 부엌을 건물 밖에 증설하고 계단을 만들며 유리문을 별로도 설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지하수로 식당을 운영할 수 없다보니 수도를 끌어줘야만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반 가정용과 다르게 필요 이상으로 비용이 추가하게 되므로 우리로서는 무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튼 식당으로 전환은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었다.
B 건물 자체가 그렇게 바뀌지 않을 수 없는 이유. 그건 대단히 문제될 게 많은 새로운 출발탄을 뜻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건물을 활용한 용도 변경이 앞으로 몰고올 파장을 생각하면 메가톤급 폭탄의 파장과 위력으로 충격파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생활에 그만큼 특별한 변화를 보여주웠고 그것을 이제부터 시작하게 되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할까?
사람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지만 내 자신이 B 건물을 사고 그렇게 휩쓸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어쨌튼 그로 인하여 나는 뿌리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그동안 심어 왔었다. 본의 아니게 내 자신이 건물에 맞춰소 변모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이상하게도 지금까지의 노력과 정직함과 신용이 무색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유흥 음식점과 노래방을 운영하게 되면 더 변모하지 않을까?
이건 이상한 방향으로의 변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기준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죽어라도 밤낮없이 일을 하는 자세가 아닌 좀더 즐기면서 돈을 버는 생활로 서서히 바꿔갈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건 한 마디로 놀라운 적응력을 뜻했다. 왜냐하면 상가 건물에 세를 놓기 위해 적정한 타협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내 안에서 받아 들여야 하는 미래지향적인 모양을 갖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의 입장을 고려 대상에 포함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기서 좀더 확실한 방법을 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냥 변화를 갖지 않는 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게를 그렇게 임대하게 됨으로서 돌아 올 수익은 어떤가! 그런 것을 놓고 미래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지금의 모습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중적인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미래 지향적인 건물을 변화는 어떻던가!
우선 창고를 새로 고치는 것이다.
그곳에 3층으로 건물을 짓자!
또한 건물 위층에는 식당을 운연하는 것이다. 하천을 바라보는 전경으로...
여기서 그런 게 현재는 이루워질 수 없는 꿈이었다. 하지만 점차 뚜렷한 사고력으로 각인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게 되면 결코 못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것이 비현실적일지라도 꿈을 크게 갖게 됨으로서 아무래도 좀더 발전적으로 운명이 바뀔 수 있는 소지가 많았다.
12. 먼저 번에 쓴 내용을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지하층을 노래방으로 바꾸는 것이다. 과연 이게 좋은 현상일까? 지금으로서는 지하실을 운영하지 못해 왔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1층에 식당이 생긴다면 그렇게 하여도 무관하리라고 본다. 적어도 모든 점에서 지금과 달라질 수 있을테니까?
과연 미래의 내게 있어서 불필요한 것을 떼어내려고 하였지만 개선되기는커녕 더 복잡하게 얽히고 있었다. B라는 건물을 구입하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었지만 해결될 실마리가 없었다. 그 것은 내가 갖고 있는 다른 쪽 재산을 판매하고 그 돈으로 수리와 리모델링을 하도록 요구하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내가 맞는 적절한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만이 최선책이었다. 이 점에 대하여 내가 특별하게 느끼는 구석은 없었다. 왜냐하면 돈을 빌리던가 다른 땅을 팔아서 한쪽의 리모델링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계속하여 B 라는 건물로 인하여 지금의 본업적인 일에 손이 잡히지 않고 시간을 빼앗기곤 한다. 사무실로 임대를 놓기 위해 칸을 막고, 청소를 하고, 각종 집기류를 옮긴 것이다. 이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다시금 불거진 창고를 구입하는 문제만 해도 그랬다. 그곳에 사무실에 있던 책상과 책꽃이 등을 옮겨 놓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금은 무척 난감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창고를 내 앞으로 이전하지 않은 현재의 입장을 고려해볼 때 그다지 우려할 사항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앞으로 더 많은 구조변경을 할 필요에 대하여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을만큼 좁은 견지력을 갖게 됨을 뜻했다. 그가 내년 1월까지 집을 비워 주기로 한 것을 믿어도 된다는 가정하게 그 이후부터는 나름대로 다른 포석을 깔아 두지 않으면 안 될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입장에서 볼 때 과연 내가 선점한 모든 것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경매로 구입한 건물과 그 옆의 하천부지를 이용하는 문제가 모두 난해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용도 변경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몽매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아내와 상의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내게 더 많은 요구를 한다. 한마디로 내게 필요한 것은 주지 않고 자신의 이윤만을 취하려고 급급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B 건물은 내게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한데 왜 그것에 그토록 집착하려는 것인지...
아내는 내게 이 건물에 관한한 자신만이 등기부상의 주인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사실상 그에 따른 주인은 모친이 갖고 있던 돈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빼내서 건물을 구입한 비용으로 포함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여전히 모친에 대하여 인색하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점이 있을 경우 용납하지 않고 요양원을 고집하는 것이다. 그것을 나는 상기시키기 위해 가끔씩 부부싸움에 끼워 넣는다.
“네가 어머니 돈을 모두 빼내서 B 건물을 산 것은 무슨 속셈이냐? 그 돈을 내놔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슴없이 요양병원에 모시라고 하는 건 이율배반이 아니고 뭐지!”
내가 그렇게 말을 꺼내는 건 적어도 양심의 가책을 가져서 모친을 잘 대하라는 뜻이었다. 적어도 그 말뜻을 주장하고저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잠잠하다. 내게 있어서 엄청한 해류가 지금까지의 변화에 대하여 한층 겉잡을 수 없도록 몰고 갔는데 애초에 이런 당치도 않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아내를 동조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내가 지양하는 방향으로 함께 휩쓸려 갔고 마침내 내 본래의 주장을 잃게 되었다. 한마디로 사치함과 허세를 물리칠 수 있는 유혹에 함께 물들어서 속인이 된 것이다.
“나는 너무 드러내는 걸 싫어해! 욕심이 과하면 망하는 법이지... 그런데 당신은 지금까지 어땠어! 너무 화려한 것만 찾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나를 몰아 세우잖아! 그냥 내가 하자는 데로 했으면 빚도지지 않고 그렇다고 이렇게 쪼들리지도 않을을 터인데...”
애초에 나는 목걸이라는 단편 소설을 떠올려 보면서 우리가 그토록 빚에 허덕이면서 평생을 뼈빠지게 일을 하여 결국에는 목걸이의 주인공처럼 빚을 청산한 뒤에는 다 늙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변한 모습을 떠 올려 보곤 했었다. 그처럼 목걸이를 돈을 빌려서 사주고 그 뒤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을 뼈빠지게 일을 하는 부부. 아무렴 지금의 내 모습이 그랬다. 항상 그 많은 빚을 갚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굉장히 익숙해온 지금의 삶이었으니까!
그 뒤 빈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몇 년간에 거쳐서 돈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세를 받고...
그래서 세를 놓으려고 하는데 건물에 세입자로 들어오는 사람은 그것 자체가 자신의 입장에 맞게 용도를 변경하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12. 처음부터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B 건물을 구입할 당시의 상황. 그리고 돈을 빌리기 위한 노력. 지금은 빚진 돈으로 인하여 계속하여 갚아 나가기 위해서 또 다시 세입자를 찾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우선 가난했다. 그리하여 이 임대 건물을 통하여 돈을 벌고 세 값을 주워야만 했는데 내가 갖고 있는 B 건물터에서는 그 돈을 뽑지 못하리라는 점이었다. 그로인하여 가게 세를 벌지 못하고 결국에는 운영에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데 그것을 그대로 두고 가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권리금을 받고 넘길 것이다. 여기에서 모순점이 있었다. 끝없이 그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이고...
내가 왜 세입자의 입장을 대변하게 되는가!
그리고 경매를 당한 B 라는 사람을 그대로 방치한 체 그냥 두고 있었을까? 인간을 믿으면 안 됨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게 지금은 B라는 사람에게 귀결된다. 그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13. 어제는 마당 한가운데 차를 받혀 놓고 시위를 하기라도 하듯이 나와 충돌을 했다. 전화도 받지 않고 세입지들의 주차도 할 수 없도록 무력 시위를 벌인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마당에 펼쳐 놓은 파라솔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뒤에 목조주택의 탁자와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에 비위가 뒤틀린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대형 파라솔을 펼 쳐서 그늘을 만들고 있는 두 사람의 인부들을 보면서도 그다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B라는 사람은 자신의 것에 대한 권위를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하루 종일 차를 주차해 놓았었고 그것이 새벽녘에 빠져 나갔다가 아침에 내가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기 위해 옥천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똑같은 위치에 주차해 놓은 것을 보았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고 그것을 싫어한다고 하면 내가 그에게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주장할 터였다.
여러 가지 경황을 볼 때 이 사람은 나를 골탕먹이려고 하는 게 틀림 없었다. 하지만 내 입장은 전혀 그런 것까지도 감지하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무지할 정도로 무방응이었다. 그에게 전화를 몇 차례 하였지만 받지를 않았다. 그리곤 오늘도 그런 상태로 차를 받혀 놓지 않았을까? 염려스러운 점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냐? 하는 사실이었다.
14. 음료수을 사 먹는 시대.
갈증을 어쩔 수 없어서 기차 휴게실내에 구비한 자판기에서 물을 한 병 빼 먹었다. 천 원. 사실상 물을 사 먹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게 급변하는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주변에 많은 변화가 일어 나고 있었다.
두 번째는 돈이 필요 없이 카드만으로 승차권을 구입하고 버스를 타게 된 점이었다. 나는 엄청나게 이상한 변모를 직접 깨달았는 게 그게 카드의 사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