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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체육관 탁구(다목적)실에서... (50)

2016.07.15 09:19

文學 조회 수:103

1. 예초기 작업

2016년 7월 14일 목요일.

아침부터 청성과 군서에 있는 밭에 가기 위해서 예초기를 손질합니다. 작년에 사용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예초기를 두 달 전에 청성의 밭에 옥수수를 심으러 갔던 두 달 전에 갖고 갔다가 시동을 켜려고 하다가 실패한 뒤에 발목까지 자란 180평 정도의 밭에 망초대를 자르지도 못하고 제초제만 분무기로 뿌려 주고 절반 정도의 부지에 옥수수를 심어 주고 왔었습니다.

청성에는 모두 800평 정도의 논밭이 있었습니다. 두어 달 전에 옥수수를 심으로 갈 때도 예초기를 갖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초제만 농약 분무기로 뿌리고 말았는데 예초기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였습니다. 작년에 사용하고 손질 한 번 하지 않았던 예초기가 기름이 굳어서 분사구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예초기를 갖고 갖지만 사용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그냥 갖고 왔었답니다. 키가 무척 크게 자란 잡초들 중에 망초대가 많았었는데 그것은 제초제로도 죽지를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초제만 잔뜩 뿌리고 왔었고…….

두 달 만에 찾아가는 청성의 밭에는 모두 800평 정도가 됩니다. 밭이 600평. 논이 180평 남짓. 이 논은 밭으로 전환을 하여 두 달 전에 절반 정도는 옥수수를 심어 놓았던 것이지요. 그 때도 망초대가 무릎까지 자랐었는데 예초기를 갖고 갔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그만 두고 분무기 농약 통을 짊어지고 열통인가를 뿌려 줬었습니다. 사실 농약 값도 션찮아서 8000원씩 5통을 구입해서 갖고 갔지만 한 병에 세 통씩 밖에 뿌리지 못합니다. 그것을 열 통되게 뿌렸으니까 세 병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농사는 제초제가 없으면 안 돼!”

그렇게 농사짓는 방법을 강조하던 농촌 사람들을 보면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요즘은 어쩔 수 없이 추세가 제초제 일색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농사짓는 밭이 온통 풀밭이 되는 형국이니까요. 또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일손이 부족해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청성과 옥천은 거리가 12km 정도 남짓 됩니다. 그곳까지 가서 농사를 짓는 게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기계를 제작하는 본업을 중단하고 갈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올 해는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두 달 전에 밭으로 개량한 논의 절반에 옥수수를 심어 놓았으므로 들여다보기라도 하려고 오늘은 예초기를 손질하면서 마음이 착잡하였습니다. 일반 제초제로 망초가 죽지를 않았으므로 예초기로 목 부분을 베어야만 했지만 고장이 나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이제는 마음에 걸렸던 것이지요. 아마도 옥수수를 심은 논밭은 풀로 뒤덮여 있을 터.

“이 밭은 사람이 게을러서 들여다보지도 않나 몰라!”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농사를 져서 어디 써 먹기나 하겠써?”

“요즘 타지 사람들이 와서 땅만 구입해 놓고 놀려 먹는 게 많아서 풀이 산더미같이 보기가 싫은디……. 어쩌면 좋아!”

그렇게 욕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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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농사일이란?

“내일 모래 장맛비가 내린다는데…….”

“그래, 그럼 청성에 가 봐야겠네!”

그렇게 아내와 내가 서로 대화를 나누웠습니다만 농사를 짓는 것은 순전히 내 몫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부축이지 않는 건 아니었고 가끔 참여하여 왔었지만,

“내가 농사지으러 시집 왔나? 난 힘들어서 못하니까 혼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어서 해요!”

“알았어! 그럼 나 혼자 하면 되잖아!”

어쨌든 아내와 나는 농사 때문에 늘 싸워 왔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밭에 제초 작업을 하러 갔다가 이혼할 것처럼 싸우고는 풀도 뽑지 못하고 다시 돌아 온 뒤로는 이제는 절대로 아내에게 밭에 함께 가자고 권하지 않아왔었습니다. 그저 가주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가서 재빨리 작업을 하고 돌아오곤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하루 이틀을 소비하게 됩니다.

내가 갖고 있는 밭은 모두 세 곳입니다. 청성의 두 곳과 군서에 한 곳. 합치면 대략 천 평 정도 될까요? 이 농사도 해마도 풍작을 점칠 수 없을 정도로 흉작입니다. 때늦게 씨를 파종하였습니다.

“언제나 늦고 되려 사람들로부터 흉을 보기 일쑤네?”

“섣부른 농사꾼이 사람 잡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고 제 넘어 사례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누~”

아마도 농사를 잘 짓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하는 말 일터. 언제나 시기를 잘못 맞추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파종을 끝낸 시기에 뒤늦게 찾아가서 하루 이틀 뚝딱 거리면서 도깨비 방망이라도 휘두르는 꼴이었습니다. 그나마 그렇게 심은 밭에서 보리가 자랐고, 팥이 영글었으며 옥수숫대가 잘 컸습니다.

해마다 감회가 새로운 농사.

해서 이번에도 비가 오기 전에 밭을 갈고 들깨라도 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우선은 예초기로 망초대를 베어낸 뒤에 다음 날에는 제초제를 뿌리고 경운기로 밭을 갈아서 콩 심는 기계로 사용하여 들깨를 파종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계획은 예초기 작업이었습니다.

아마도 점심 식사 후에 예초기를 들고 갔다와야할 듯 하여 수리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이던가. 경운기를 갖고 가서 바닥을 갈고 들깨, 콩, 팥……. 같은 작물 중에 하나를 파종하려고 하는데 들깨가 가장 유력합니다. 우선 고라니가 뜯어 먹지를 않았습니다. 농작물을 망치는 것 중에 하나가 고라니였지요.

그동안 일이 바빠서 가보지 못했었는데, 모두 세 곳의 밭에 곡물을 심으려고 이제야 서두릅니다. 예초기는 분해를 하여 청소를 하고 뿌라그를 교체하자, 시동이 이내 걸렸습니다. 사실 예초기는 엔진 톱과 다르게 수리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시동도 잘 걸리므로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요. 그렇지만 엔진 톱은 전혀 달랐습니다. 아마도 출력이 다르므로 같은 2 샤이클 엔진이지만 엔진 톱의 경우는 분사 방식이 전혀 다른 것 같았으니까요. 화목보일러를 사용하여 겨울 난방을 하다 보니 나무 장작을 자르던가. 밭 주변에 쓸데없는 잡목을 자르려고 엔진 톱을 갖고 갔다가 시동 걸리지 않아서 되돌아 온 적이 여러 차례이다 보니 지금은 전기톱을 갖고 다닙니다. 경운기에 발전기를 연결하여 자체 전기를 생산하여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다보니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무렇게나 코드만 꼽고 스위치를 넣으면 되었으니까요. 단지 발전되는 전기가 문제였지만 그건 다음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청성에는 전기를 쓸 수 있는 농업용 시설도 가까이 있었으니까 그 걱정은 덜어도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전기톱만큼 좋은 게 없었습니다. 집에서도 나무를 자를 때 엔진 톱보다 전기톱을 사용하는 편이고요.

그러다보니 엔진 톱은 고장 난 상화이었고 전기톱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산에 갈 때도 경운기로 전기 발전기를 돌려서 220을 생산하여 전기톱을 사용하는 게 편리하여서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엔진 톱을 관리하는 게 힘들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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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성으로 출발.

점심 식사 후에 예초기를 실고 청성으로 향했습니다.

청성면 거포리. 주살 같이 차를 1톤 화물차를 운전하여 대략 40분 정도에 도착합니다.

우선 시원한 공기, 녹음이 짙은 산마루.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포리 시골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논 쪽은 잡초가 많지 않아서 예초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밭으로 향했습니다. 논에서 밭까지는 대략 500여 미터 떨어져 있었으므로 농로를 따라 조그마한 도랑의 둑길을 따라 구불거리면서 올라갔고 예의 밭이 있는 마을 양수기가 있는 건물 앞에 빈 공터에 차를 세워 놓고 예초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밭으로 오릅니다.


농로 옆에 밭이 위치하였지만 언덕 위에 있다 보니 경사로를 올라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농로 반대편 쪽으로 대략 50미터 앞에 농가주택이 한 체 새로 단장을 하여 누군가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먼저 왔을 때 아내가 하던 소리가 언 듯 생각났습니다. 바로 옥수수를 심기 위해 왔던 두 달 전이었지요.

“밭에 가 봤더니 앞에 농가주택이 한 채 새로 지어져 있는데…….”

“그래, 전원생활을 하려고 누군가 살러 왔나 보지!”

그 때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고 그렇게 주고받았었는데 오늘은,

‘과연 누가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