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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장

2012년 2월 23일의 대구 출장은 '오산 출장'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기계를 납품하고 한 달만에 무려 세 번씩이나 A/S를 다녀와야 했으므로... -본문 중에...-

대구 출장 (57)

2014.06.09 09:24

文學 조회 수:468

 아래 내용들은 대구 출장을 나가면서 무궁화호 열차에서 쓴 글이다. 주말이 아니여서 기차는 한산했다. 이 얘기는 그만큼 복잡하지 않다보니 완행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돌아 올 때는 대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못지 않게 새마을호에도 탑승개이 많음을 보았다. 그러므로 구태여 무궁화호 열차만을 고집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분산되어서 그많큼 복잡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연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옥천역에서 무궁화호를 탈 수 있는 열차의 시각대가 많지 않았었다. 적어도 KTX 고속열차가 출범(?)하기 이전에는... 그러던 것이 고속 열차가 개통되면서 이번에는 간이역에 분산되어 이동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요 부가결한 열차 운행이 필요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속열차는 큰 역만 정차를 하게 되므로 간이역으로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간이역으로 환승을 하여 표를 구매하고 열차 시간도 그에 따라 조정되었으므로 옥천역에도 차량이 정차 하는 게 일반적인 사실로 바뀌게 되면서 무척 편리한 이동 수단이 되었다. 그 전에는 이런 편리함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하행선은 충북 영동역에서 탑승했고 상행선으 대전역에서 탔었다. 그러던 것이 고속열차 이후에 좋아진 것이다. 저희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터였다. 그만큼 권위의식이 강했던 만큼 서민들에게 조금만 편의도 제공하길 꺼렸던 부분이 없잖았다고 부정하여 왔던 철도청이니만큼 지금도 그 때의 기억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이상한 기분이 없잖았다.

  '하루아침에 열차 시각표가 바뀌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래 내용은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2014년 6월 2일 월요일)  수요일에 쓴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옮겨 놓지 못한 체 노트북 컴퓨터에 담겨 있다가 겨우 오늘에서다 옮기게 된다.

 

~~~~~~~~~~~~~~~~~~~~~~~~~~~~~~~~~~~~~~~~~~~~

  2014년 6월 2일 월요일 

 

단절

침묵

의사 소통

회의적

반감

교우

이질적

정황

반론

무자격

기술전수

도둑


  내게 물론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말해서 선의적이지 않은 무형의 도둑질을 한 것이었다. 그런 H.Y에게 손을 내밀다니...

  D.J 라는 공장에 아내와 함께 갔던 것은 사실 H.Y를 만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를 멀리하려는 내 의도와 맞물려서 왕래를 하지 않는 게 가장 나으리라는 천적.나이벌.경쟁자라는 의식이 팽배했었다. 사실상 얼굴이 변한 모습을 보면 내가 하던 사업장에 불쑥 나타나서 기술을 빼내가려고 노려보던 그가 떠올랐다.


2. 포옹하다. 떠안다. 공약! 각종 공약을 남발하면서 지방 선거에 등장하는 지역구 의원들과 후보자들을 바라보면 여간 탐탁지 않았다.


3. 여유를 갖고 폭넓게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도 바쁜 나머지 그런 여유도 갖지를 못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정신이 없다고 할까? 물론 바쁜 것과 돈벌이하고는 그다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이유는 돈이 모아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들어오는 수입이 없었다.


4.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날씨가 잔뜩 흐렸다. 나는 새벽 4시 13분에 알람을 맞춰 놓았다가 깨었다. 귀찮음. 아내가 먼저 일어난 뒤에 깨우는데 귀찮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농사를 짓기 이전에는 이런 귀찮음보다 졸립고 피곤함으로 엄습했던 것에 비하면 많은 변화였다. 지금은 농사를 지으면서 새벽에 일어나는 게 당연하게 습관화 되었으므로... 그렇게 신체적인 변화를 갖게 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몸이 축나는 느낌이 든다. 연 이틀 새벽에 밭에 나갔다 온 뒤로 몸이 지쳐 버린 느낌이 들었으니까? 어제는 밤 10시에 취침에 들었는데 새벽에 눈을 뜨자 귀찮음이 느껴졌던 것이다.


5. 열차를 타고 대구른 간즌 중에 영동역을 지났다. 황간역을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철로변에 노랗게 핀 민들레가 한동안 계속된다. 온통 노랑 민들레로 일색이다. 노랑꽃이 나타났다가 뒤로 흐르는 데 표현하자면 흐르는 느낌. 영상이라고할까? 열차의 진행 방향 반대쪽으로 흐르는 듯한 노랑 꽃무리가 너무도 아름답다. 인위적으로 가꿔 놓은 꽃밭처럼 흩으러진 꽃의 잔치. 첡길변과 언덕 모두가 노랑 꽃으로 뒤덥혔다. 비탈진 경사로까지도 노란 꽃 천지다. 마치 꽃 반의 신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눈에 보이는 언덕과 철길 주변이 온통 샛노랗다. 노란꽃 속에 파묻혀 있어서 다른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꿈 속에 들어온 것처럼 착각이 일 정도로 한동안 계속된 꽃의 향연.

  기차가 달려가지 않고 멈춰 있으면 이런 꽃의 세계는 그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아 차리겠지만 달려가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꽃의 거리는 계속됨으로 마치 거짓말을 보는 것처럼 믿을 수 없었다. 눈을 의심하기라도 하듯이 더욱 바라보게 된다. 얼마나 꽃이 더 이어질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다시 황간에서 추풍령역까지 노랗게 펼쳐진 꽃길이 이어진다. 엄청난 양(? 이런 표현이 맞다면)이다. 감히 누가 이 길을 이토록 표정없고 딱딱하며 초록의 잡초가 흐리멍텅하게 시야를 어지럽히며 스쳐지나는 다른 철길 변과 다르게 했던가! 이렇게 조성함으로서 사람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움을 새로 발견한 것처럼 노랗게 피어난 길이 한마디로 눈부시다. 상행선이건 하행선 우측편 창가. 복선의 철길 중앙에 피어 있었으므로 차량이 달려가면 금새 뒤로 밀려난다. 많은 사람들이 서서 손을 흔들 듯이 기차에서 뿌려지는 바람으로 심하게 흔들린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수없이 핀 들국화.

  나는 이제 다시 지루하고 단조로운 초록의 잡초와 덤풀을 보면서 고개를 돌렸다. 김천에 가까워지면서 꽃 길은 뜸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부터는 꽃이 져서 꽃몽오리가 변색이 된 것처럼 타들어 갔다. 색체가 노랗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꽃인데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에 노란 빛이 퇴색하고 말은 것일까?


황간역을 지나면서부터는 그런 꽃 무리는 없고 간간히 한 무더기 씩 조성된 꽃이 길게 늘어서 있을 뿐이다. 아까처럼 그렇게 황혼한 꽃밭은 없었다. 


6. 대구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대전역까지 표를 끊어야만 했다. 그곳에서 기계에 필요한 충격 완화 효과를 갖는 고무와 볼트를 구입해야만 했다. 그리곤 다시 옥천 버스를 타게 될 것이다.


7. 버스.지하철 교통 카드(반지처럼 되어 있는 고리형태의 충전기)를 충전하지 못하여 현금으로 대금을 지불하고 있었다. 충전할 마땅한 곳이 없었는데 경산역 근처 버스 간이 매점에서 구입한 것이었지만 다른 곳에서 충전을 할 수 없다보니 조금은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낀다. 오늘은 국민은행 카드로 대구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사용해 볼 참이다.   


8. 먼저 대구에갈 때는 논에 물이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모내기를 해서 모가 심어져 있어서 거울처럼 나늘을 비친다. 흰 빛깔이 언 듯 언 듯 스치는 것이 물을 담은 쟁반처럼 느껴진다. 하늘이 땅에 박셔 버린 듯한 이 투명성(땅을 뚫고 하늘을 심어 놓은 것 같은)은 벼가 커지면서 사라질 것이다.


9. 옥천역, 황간, 김천 역과 다른게 구미역은 역사가 플렛포옴에 기둥을 박고 세워져 있어서 어둠 침침했다. 마치 터널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어둡니다. 느낌이 좋지 않은 것은 이 호호로운 궁전이 빚으로 지어졌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철도청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이지만 고속철도가 서는 역마다 이런 건물로 떠받들어져서 탁트인 트낌보다는 갇혀지고 답답할 정도로 터널증후군에 시달리는 듯하다. 아마도,

  ‘지하철 운전자들이 이런 터널 속을 운전하면서 호소하는 병세가 이런 것일까?’ 싶기까지 하다. 그만큼 짧은 시간임에도 열차 운행의 매력을 잃어 비릴 수 있는 역사의 건립으로 한결같이 떠받들어진 교각의 느낌. 영등포 역. 대구역 같은 곳은 반쪽은 또한 백화점이 함께 있었음으로 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백화점을 들어가는 느낌이기도 들기도 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철도청과 상업시설이 공존 관계에 대하여 그다지 좋은 관계는 없었다. 열차를 타기 위한 손님으로서는 백화점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복잡하고 번화한 상권에 준하는 대구역에서 지하철로 이어지는 통로에 늘어선 상가로 비좁아진 통행로에 대한 붎편함을 호소할 겨늘이 없는 것이다. 이 때기는 그만큼 통행로까지 밀고 들어오는 상권과의 싸움에 체념을 해 버린 상태라는 점이었다. 육체적으로 체내에 암적인 존재, 보기 싫고 버러지처럼 느껴지는 역겹고 싫은 느낌이 드는 상술적인 것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는 체념이 묻어 있었지만... 그만큼 대구 지하역에서 대구 지하철로 내려가는 통로는 병목현상처럼 상술에 놀아난 모델 1호였다. 내가 그 혼잡함을 느끼고 깊숙이 파고든 것처럼 사람의 통행을 막는 번잡함을 일컬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언정 누구나 그곳을 지나게 되면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새벽녘에는 통로에 즐비하게 늘어선 진열장과 매점들이 비닐 카바를 뒤집어 쓴 체 늘어서 있었다. 한마디로 지하철 통행로와 칸막이 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경계 구역이 없었다. 모두 통로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 느낌이 더 드는 건지도 모른다.


10. 오전 6시 35분 현재 왜관역이다.

  앞서 얘기 했듯이 D.J 이라는 공장의 건물. 그곳에 이전을 한 B.J.O 라는 사람이 나와 H.Y 라는 사람을 동시에 개업식에 불러 들인 것에 대하여 나는 전혀 이의를 갖지 않았지만 불편한 심기는 여전히 상존했다. 그것은 좋지 않은 감정의 지배적인 이유를 놓고 그로부터 비롯된 감정의 기복이었다.

  이곳에 납품한 세 대의 기계 역시도 내가 만든 게 아니었다. 물론 하 대의 기계만이 내가 만든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B.J.O 의 개업식에 찾아와야만 했다는 점이었다. 이곳에 내가 아는 사람이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하나는 H.B 이라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M.D 공장의 여 사장이었다. 이들 두 사람 모두 내 과거와 연관을 깊게 하고 있었다. 어쩌면 앞서 말한 H.Y와 .D.J 이라는 사람보다도 더 질긴 악연과 인연을 간직하였을 것이다.


11. 내가 부러워 한 것은 6~700평의 건물을 8억원이라는 돈을 주고 샀다는 D.J 의 B.J.O 였다. 그는 내 추억에서 H.B 이라는 곳에서 근무하던 종업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앞서 경영했던 회사의 처남이기도 했다. 이곳을 나는 거래처로 삼고 기계를 하고 있던 중에 모두 만난 얼굴이 다시 30년이 훌쩍 지난 뒤에 모두 만난 것이다.

  세월이란 이처럼 빠르게 지나가서 모든 환경을 바꿔 놓았다.

  내가 앙숙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넌 H.Y도 이때는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였었다. (나그네라는 표현은 어색한 패가 있었지만 어쨌튼 그렇게 표현하기로 하자!)


마치 나는 인생을 거론하기라도 하는 윳놀이 판을 돌리고 있다는 느낌. 몇 사람이 윳 놀이 판 앞에서 윳을 던져서 말판을 놓는다. 그리고 말 판은 윳을 던질때마다 뛰어 다닌다. 쫒고 쪽기는 추격전. 드디어 1등과 꼴찌가 구별되어 진다. 둥근 원형의 말 판을 한 바퀴 돌아 갈 수도 있었고 지름길로 꺽어지기도 하면서 서로 경쟁하고 잡고 잡혀 먹히기도 한다. 말판을 잘못 놓아 잡혔을 때의 안타까움. 그리고 막판을 뒤집는 역전승.


12. 노트북 컴퓨터가 하드디스크를 교체하였다. 출장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PLC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어야만 했다. GPC, LG, 터치판넬 용 등 세 가지 프로그램이 설치 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설치되어 있는 유일한 컴퓨터(아니, 하드디스크라는 말이 맞을테지만)가 P560 노트북에서는 1호기였다. 처음에 구입한 것으로서 ‘윈도우 XP’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3호기에서 빼낸 ‘하드디스크’를 끼워 넣고 집에서 사용하는 주 업무용으로 이용했었다. 왜냐하면 3호기는 화면 해상도가 낮았다. 그러다보니 자연 손이(사용하지 않는 것) 가지질 않는다. 그에 걸맞게 1호기 노트북은 화면 해상도가 높았다. 반면 액정화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접었을 때 화면이 꺼지는 장치가 고장이 듯했다. 여러 차례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서 겨우 살려 놓기 일쑤였다. 지금 1호기를 출장용으로 갖고 나와서 기차와 전철을 타고 가면서 사용하는데 매번 그렇게 꺼졌다. 하지만 집에서 사용할 때는 액정 화면을 접지 않고 50인치 모니터와 연결하여 사용하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3호기를 출장용으로 갖고 다니려고 하는데 1호기의 하드 디스크의 ‘윈도우 XP’가 3호기에서 인식이 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여야만 하는데 아무래도 화면 해상도와 디스플레이가 달라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여야 할 듯 하다. 반면 1호기 하드 디스크를 3호기에 끼워 넣으면 작동이 되었었다. 그렇게 사용하다가 지금 출장을 나오면서 하드 디스크를 바꾼 것이지만...


13. 세월이 흐른 뒤에 연고자들을 바라보면 그가 살아온 길이 보인다.

  B.J.O 의 개업식에 찾아가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참으로 인생의 변화의 기복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의 차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껏 살아온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느낌이 만감(萬感)하다. 적어도 좋지 못한 과거의 경험과 관계가 모두 덮어지게 되는 것도 어쩌면 세월 탓이리라! 내가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던 사람 중에 H.B 이라는 사람은 어떻던가!


14. 이제 돌아가는 길이다. 대구 화원이라는 곳에서…….

  다시 30분 거리를 걸어서 ‘대곡’ 지하철역에 와서 전철을 탄다. 대구 역까지 가기 위해 자석에 앉아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외장 형 배터리에 연결된 코드를 뽑아서 노트북 컴퓨터의 전원 선에 꽂는다. 이렇게 연결을 시켜서 사용하게 되면서 배터리를 여러 개 갖고 다니지 않았다. 단지 집에서 나올 때 충전을 하여 갖고 다니면 되었다.

  J.H의 사장은 다시 기계를 맞춘다고 하더니 그렇게 하지 않았다. 먼저 사용하고 있는 기계를 어떻게 해서든지 활용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내가 설명을 해 줬다. 좋은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지만 대구에 있는 공장들이 그렇듯이 매우 민감한(자금력의 확보에 무색할 정도로 어렵다는 점을 놓고 볼 때) 부분이 없잖았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담을 갖지 말라고 설명을 해 준다.

  “나중에 맞추셔도 상관없으니까……. 제게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그럴까?”

  “예!”

  “여유가 허락할 때 기계를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오히려 내가 위안을 준다.

  그 뒤, 서로 악수를 하고 헤어지면서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지 않아도 된다면서 혼자서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도중에 중간에 있는 B라는 다른 공장을 찾았다. 그곳은 몇 년 전에 내 기계를 중고로 구입해 놓고 사용하고 있던 곳이었다. 화원에 있는 D.Deg 이라는 곳에 기계를 납품할 때였다. 전화가 와서 물어 봤더니 자신이 중고 기계를 구입했는데 사용할 수 없어서 A/S를 와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D.Deg 이라는 곳에 납품을 할 때여서 함께 봐주겠노라고 말하고 찾아 갔었다. 그때는 새로 공장을 차리는 듯싶었었는데 그 옆의 공장과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현장에서 작업하는 사장에게서 직접 듣게 되었다.

  우연하게도 이곳과 J.H 이라는 곳과 바로 500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던 것이다.  


15. 대곡 역에 설치되어 있는 혈압기계에서 혈압 측정을 해 본다.

  최저 혈압 : 131,  최저 혈압 : 78

화원에서부터 계속 걸어 왔으므로 최고 혈압이 높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J.H 이라는 사장과 사무실에 앉아서 얘기를 할 때 자신의 내용을 상세하게 말하였는데 나는 잔금 160만원을 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찾아가는 처지가 된 것 같았다.

  “기계 한 대를 더 맞춰야겠어요!”

  말은 그렇게 했는데 사실상 왔다 가는 것을 고집하는 듯싶었다. 그렇지 않고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면 결코 온라인으로 송금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구태여 찾아가지 않더라고 해도 송금을 해 주면 되는 것을 찾아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애써 숨긴다. 또한 대금을 완납한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여서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16. 대구역에서 대전역까지 열차표를 끊었다. 대전에서 기계 부품을 구입할 곳이 있어서다. 그리곤 옥천가는 시내 버스를 탈 것이다. 오전 11시 7분 차표였는데 10시 30분 정도에 도착을 하여 아예 점심을 먹기 위해 대구역에 인근해 있는 시장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이곳에 익숙해졌다.

  ** 식당.

  보리밥에 각종 채소가 곁들어진 비빔밥이었다.

  내가 좀 이른가! 

  모녀가 함께 주방(주방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개방된 부엌이었다. 뒤에 칸막이겸 탁자가 ㄴ자 형태로 놓여 있었다. 그곳에 탁자에 팔목을 걸쳐 놓고 위의 긴 나무 의자에 앉아서 주문을 하고 앉아서 밥을 먹으면 그만이었으니까?


한 어린아이에게 먹고 있는 과자를 뺐어먹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얘야, 과자 좀 주렴?”

  “싫어요!”

  제가 먹고 있는 과자를 이상한 아저씨가 달라고 손을 내밀게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기겁을 하며 놀라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아니는 갖고 있는 과자를 나누워 주기도 하니까? 그럴 경우에 그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커다란 감동을 받게 된다. 그래서 갖고 있는 돈을 꺼내서 주기도 했었다.

  이곳 식당에 함께 있는 두 모녀를 나는 바라보았다. 내가 물어 보았을 때 노파는 자신이 이곳에 먼저 장사를 했고 이제 나이가 많아서 딸 에게 물려 주웠다고 했다. 그렇지만 딸인 아주머니 역시 40대는 넘어 보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축에서 볼 때 한참 젊어 보였고 나는 좀 젊어 보이는 이 여자 식당에 와서 밥을 먹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이곳에 노파가 보인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왔을 때 보았고 지금 세 번째도 함께 있는 것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딸은 옥수수가 들고서 노파에게 권하는 듯 했다.

   “이거 하나 잡숴 보세요!"

    물론 그렇게 말하는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직영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그 두 사랍이 주방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옥수수 하나를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도 먹고 싶은데... 할머니 그거 저한테 파세요?”하고 물었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고 그 행동이 귀여워서 물었던 것이다.그러자, 노파가 딸에게서 옥수수를 받아서 내게 주고 갔다.

  “옛수다. 기거 잡숴보소!” 한다. 그 하는 모습이 어린 아이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손을 벌리자 덥썩 자신이 갖고 있던 과자를 주는 모습과도 같이 정감이 어렸다. 나는 고맙다고 말한 뒤에 지갑에서 만 원짜리 돈을 할머니 주머니에 넣어 주자 급구 받지 않으려고 하더니 내가 지갑에 그득한 돈을 보여주면서,

  "할머니 오늘 돈 많이 벌었는데... 봐요!“

  “웬 돈을...”

  “그러니 그 돈을 주죠!”

  그제서야 할머니는 내 말을 수궁한다. 이곳에서 딸을 도와 주기는 해도 마음껏 용돈을 받지는 못할 터였다.  

   “웬 돈이 이렇게나...”

  그렇게 그제서야 고맙다는 말을 한다.

       

노파가 보이지 않자 나는 그 딸인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았다.

  “이 근처에 옥수수 파는 곳이 있나요?”하며 물어 보았다.

  “웬걸요! 지금 철이 아니어서... 어제 **에서 놀러 갔다가 사 온 건데요!”

  “그래요! 옥수수가 딱딱하네요!”

  나는 옥수수를 절반을 부러뜨려서 그 한 쪽을 먹고 다른 한 쪽을 아주머니 주며 말했다.   “이거 할머니 드리세요!”

17. 자꾸만 노트북 컴퓨터의 액정 화면에 꺼진다. 화면을 덮지도 않았는데 마치 덮어서 컴컴해지는 것처럼 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 화면을 일부러 덮었다가 폈다를 반복해서 화면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계속해야만 했다.


18. 김천역에서 영동역까지 나는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누가 깨우길래 바라보았더니 내 옆에 3호차 26석이었으므로 통로 쪽에 앉아 있었는데 창가에 빈좌석에 앉겠다고 깨웠던 것이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무릎 위에 가방과 노트북 컴퓨터를 올려 놓은 자세로 꾸부정하게 일어나서 통로 쪽으로 나갔다. 20대 여성이었다. 아마도 내 딸아이뻘 되리라! 얼굴에 왕성한 여드름의 흔적들 때문에 깨끗하지 않다. 어쩌면 내 딸처럼 똑같은 모습일까? 나는 이런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다. 깔끔하고 깨끗한 피부를 갖고 있는 여자에게 호감이 있다고 할까?

  그렇지만 여성 편립에 대하여 조금 내용을 쓰고저 이렇게 펜을 돌려 본다.

  지금 이 나이에 여성에 대한 호기심은 많이 사그러 든 게 사실이었다.   


그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은 기겁을 하면 놀라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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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대구로 출장 중이여서 집에서 새벽 4시에 기상을 하고 옥천 역에 나온 자전거를 타고 왔다. 역내에 걸려 있는 현재 시각은 5시이고 13분만 있으면 무궁화호가 도착한다.

옥천역내에 와이파이로 연결되어 인터넷이 가능하게 되어 카페에 들어 와 글을 올린다. 하지만 열차 내에서는 인터넷이 불가능했다.  

생각 모음 (198)

1. 옆 집 창고에 세를 들어온 A라는 사람의 사업적인 위기의식은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했다.

2. 어제(2014년 5월 13일 화요일)는 보리 순을 아내와 함께 19개 만들었다.

눈을 감고 먹는다. 쓴 것을 억지로 먹어야만 했다. 다른 인공적인 감미료(MSG)를 첨가하지 않았다.

쌀 튀밥과 떡 튀밥.

현재 대구로 출장 중이여서 집에서 새벽 4시에 기상을 하고 옥천 역에 나온 자전거를 타고 왔습니다. 역내에 걸려 있는 현재 시각은 5시이고 3분만 있으면 무궁화호가 도착합니다.

옥천역내에 와이파이로 연결되어 인터넷이 가능하게 되어 카페에 들어 와 글을 올립니다.  떡 튀밥에는 사카린이라는 첨가물이 넣어 졌는데 그 것을 주로 내가 다 먹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여간 신경이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깜빡 잊고,

  “아저씨, 사카린 넣지 마세요!” 하는 말을 잊어 버렸었다. 그래서 달짝지근한 맛을 끌리듯 먹을 수밖에 없었다.

3, 기계를 설치한지가 5일 되었는데 다시 A/S를 가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대구로 출장을 나가게 된 것이다. 사용하는 방법을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안 그래도 어제는 조은지관 사장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었다. 기계를 납품하고 바로 결제를 부탁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일렀다. 그래서 포기를 한 것인데 마침 전화가 온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두 가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A/S를 포기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가느냐?

  A/S를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기서 내가 선택하게 된 것은 물론 A/S를 다녀오는 것으로 귀결 되었지만 J.H에서 계속하여 A/S 요청이 들어와서 그렇게 할지는 미지수였다. 애초부터 사용하지 못할 곳이라면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럴 경우 300만원의 회수 비용이 들어갔다. 계약금을 돌려주고 기계를 갖고 와야 되니,

  ‘이래저래 손해만 나게 될 테니까?’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처음 기계를 납품하는 곳이어서 익숙지 않은 탓에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꺼리게 된다. 하지만 그와 같은 곳으로 D.Deg 이라는 곳은 2년 전에 납품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었다. 이곳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는데 그 이유는 작업자의 서로 다른 견해 차이가 있었다.

4, 3D TV에 홀딱 빠짐. 깊고 웅장하며 깊이가 있고 튀어 나오는 것. 사물이 TV 밖으로 튀어 나오게 느껴진다.  

5.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것.

  흐드러지게 핀 꽃을 바라보면 계절이 바로 여름으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그처럼 아카시아의 흰 꽃이 주는 느낌은 벌통을 지고 제주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아카시아 꽃을 따라 양봉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알맞은 시기이리라!

  그렇지만 평범한 사람으로서 아카시아 꽃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심정은 다만 계절 감각을 느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5. 똥파리가 따라 붙었다. 화원 시내의 대구교도소를 끼고 나가다가 2차선 도로에서 다시 반대편의 골목으로 들어서야만 했는데 중앙 차선에 표시가 없는 곳에서 일방적인 위반을 하게 되었다. 이곳 골목길을 따라 들어와야만 했던 것은 우연히 J.H에서 통로를 거쳐서 돌아 나오게 되었을 때 알게 된 곳이었다. 이곳이 전에 와 본 곳이라는 사실을…….  

  먼저 금요일에 대구 화원에서였다.

  화원 IC에서 나와 화원 시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S.S 가 따라 온다고 하여 함께 차량에 탑승하여 고속도로를 타고 대구까지 내려온 것이다. 화원 IC로 나왔는데 지리를 잘 몰라서 성서공단 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톨게이트를 들어와서 화원으로 나왔으므로 1,500원을 물게 되었지만 사실 연장되기를 따라 계속 가게 되면 500원 정도만 더 추가하면 되었다. 하지만 성서 공단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대구 톨게이트에서 1,2 차선으로 들어섰다면 톨게이트로 나가지 않고 계속 진행하다가 화원 IC 에서 요금을 지불하면 되었다. 하지만 습관은 그야말로 바뀌지 않고 성서 공단 길로 들어서게 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성서 공단에 있는 S. Gang 이라는 공장에 자주 가던 습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밖으로 나간 뒤에는 다시 성서공단 IC 로 들어간 뒤에 화원 IC로 나갈 때까지 1500원의 통행 요금을 지불하게 만들었다.

  화원 시내 길은 지하철 공사로 도로가 마구 파헤쳐져서 온통 공사 중이었다. 내가 처음 A라는 곳을 방문했을 때 알려준 데로 방향을 틀었다.

  “교도소로 들어와서 뒷길로 가는 소로 길을 타고 가다가 그 끝에서 다시 2차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2차선 도로로 진입하자마자, 좌회전해서 골목을 들어서면 우리가 있는 공장들이 보일 것입니다. 밖으로 쌓아 놓은 완제품들이 빠래트에 실려 있으니까요!”

  처음 알려준 것은 몇 년 전이었는데……. 이번에 진입한 도로는 좌회전을 하지 못하게 중앙선이 노랗게 칠해져 있었다. 아마도 불법 차량을 방지하기 위해서 황색 선을 그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알았지만 예전에처럼 그곳으로 꺾어 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곳에 경찰 차량이 위반차량을 단속하고 있던 중이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모르고 진입했으니 뒤따라서 경찰 차량이 쫒아 올 수 밖에…….

  “*** 차량 교통 법규 위반을 하였으니 나와 주기 바랍니다.”

  차량에 달린 확성기를 타고 뒤에서 진입하던 경찰차가 다가오면서 마이크로 소리쳤다. 그렇지만 나는 차량을 세워 놓고 예전에 방문한 적인 있는 B라는 공장 앞에서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경찰이 탄 차량에서 한 사람이 내린 뒤에 내게 다가 왔다.

  “그곳에서 불법 좌회전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단속하는 중인데도……. 황당해서 뒤 쫒아 왔으니 운전 면허증을 봅니다.”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운전 면허증이라…….”

  지갑에서 운전면허증을 꺼내서 경찰에게 제시를 한 뒤에 나는 계속하여 앞에 서 있던 B라는 사람에게 물었다.

  “C라는 공장을 가려고 하는데……. 이쪽으로 계속 갑니까?”

  “그는 예전에 내게 A/S를 와 달라고 부탁한 터였으므로 지금의 상황을 그나마 이해하는 듯싶었다. 그렇지만 진입하는 도로를 애초에 알려 준 사람이었다. 그를 통하여 이쪽으로 들어오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 계속 그렇게 진입을 시도했으므로 그 방법이 잘못되어 있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예전의 습관대로 따라 해서 지금처럼 교통 위반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상 길만 알았다면 이렇게 오지 않아도 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는 줄 곳 머리 속으로 그 위치 계념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C라는 공장의 위치를 묻게 되었던 것을 상상하였었고 그렇게 행동을 했다. 아무래도 교통경찰 차량을 보지 못한 것이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었겠지만…….

7. 감기 증상이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열이 나왔는데 화원역의 화장실 앞에 설치 되어있는 혈압기에서 득정을 해 봤더니,

  확장기 혈압 HG 147 수축기 혈압 HG 95 가 되었다.

  ‘혈압 기계가 고장 났는가, 이상하네!’ 생각을 들어서 여러 차례 측정을 해 보았지만 똑 같았다. 혈압이 이런 식으로 측정된 적이 없었다. 특히 수축기 혈압이 95 가 된 적이 없었으니까!

  콧물이 계속 흘렀다.

  생각해 보면 늘 감기 증상이 끊이지 않았는데 지병이 축농증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오른쪽 뺨을 전기톱으로 다치고부터 콧속의 체온을 조절할 수가 없는 것처럼 음식물이 약간만 뜨겁고 차가울 경우에는 어김없이 콧물이 흘렀다. 이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받아들이는 게 지극히 당연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내 육체가 아직도 예전의 상처에서 낫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른쪽 뺨을 깊게 손으로 누르게 되면 얼얼하고 아팠다. 이부분의 증상은 의외로 오래가는 것 같았다. 여전히 낫지 않을 것처럼 절단하고 잘랐던 신경과 핏줄들이 제 자리를 찾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릴 태세니까? 제 자리를 찾게 될지언정 복원력은 갖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200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백 육십 만원은 좀더 사용해 보고 난 뒤에 줄게요!”

  사장이 그렇게 말하였으므로 나는,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했다.

  아침에 대구로 가는 무궁화 호 열차 안에서는 졸음이 쏟아 져서 어쩔 수 없이 노트북 컴퓨터로 글 쓰는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었다. 아마도 감기 증상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어제 밤에는 12시가 약간 못되어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에 4시에 일어났으므로 불과 4시간 밖에 잠을 자지 않았었다.           

거기다가 목구멍이 아팠었는데 어제 만든 “보리순 건조식품” 가루를 뒤집어써서 그런 듯싶다. 불과 19개의 <가루약>을 만들었는데 가격으로 치면 475,000에 불과하였다.

  일반인들의 평상시에 인구 이동은 많지 않았다. 무궁화 호위 좌석이 남아도니까? 그렇지만 주말의 좌석 표는 모두 매진이 되기 일쑤였다. 평소의 승차 인원은 고속열차로 분산되어 탑승하는 관계로 그다지 만원을 이루지 않았으나 주말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일 좌석 표를 끊을 수 없을 정도로 탑승객이 많아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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