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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장

2012년 2월 23일의 대구 출장은 '오산 출장'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기계를 납품하고 한 달만에 무려 세 번씩이나 A/S를 다녀와야 했으므로... -본문 중에...-

대구 출장 (53)

2014.04.13 06:11

文學 조회 수: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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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무궁화호 열차가 만원 사태에 이른다.

대구역에서 2시 13분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는데 콩나물 시루처럼 꽉들어찬 사람들로 인하여 발디딜틈조차 없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층계에서 내려오는 앞 쪽에는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차량이 도착했지만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안에서 나온 사람들을 또 그만큼 토해 놓았으므로 줄을 서 있는 사람들과 안에서 나온 사람들이 합쳐져서 피난민을 방불케 한다.

 

차량(6개. 중간에 휴게실)의 뒤 쪽편으로 가서 탔다. 

앞 쪽과는 다르게 뒤 쪽은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다. 통로마다 서 있는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서 서 있으려니 무척 답답한 느낌이 든다. 무언가 쓰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려서다. 5호차 출구 밖으로 나가서 6호차 사이의 화장실을 찾아 들었다. 으례히 이곳은 객실보다 조금은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조금 냄새가 나서 그렇지...

화장실과 반대편의 벽으로 세 사람이 벽을 기대고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네 사람이 앉아도 될 것 같아서다. 이렇게 화장실 앞의 통로에 마치 내 자리라도 되는 듯이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바닥에 깔로 안자 마자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든다. 가방을 무릎 사이에 끼워 놓고 그곳에서 외장형 배터리와 연결된 콘센트를 빼낸 뒤에 노트북 단자대에 꽂았다. 그리고는 가방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걸쳐 놓고 양손을 자판에 올려 놓은 체 그렇게 대구역에서 옥천역까지 가는 동안 글을 쓰는 것이다. 화장실 앞에서 꽉 들어찬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는 벽에 기대 앉아서 노트북으로 글을 썻는데 이런 자세가 벌써 익숙해져 있었다. 아니, 써야마 했다고 할까?

 

 대한민국의 열차에 가득 찬 사람들. 이들은 편안한 열차 여행 생각했었지만 주말마다 온통 가득 들어찬 사람들에게 시달리면서 입석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여야만 했다. 이것이 현재의 열차 여행의 현주소였다. 그만큼 고통을 감내할만도 하련만...

 

  누구를 위한 배려던가! 열차 차량을 증설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여는 것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찌 가당치나 한 일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통로와 화장실 앞에서 쭈구려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냥 서 있게 되면 다리가 아팠다. 되도록이면 앉을 자리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대구로 출장을 나갔다가 오후 3시 55분에 옥천역에 도착한다. 이제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서 제 자리를 찾게 되면 모든 게 꿈처럼 아련할 것이다. 너무 분주하고 정신이 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모두 기계를 만드는 데 할애할 것이고...  

 

 

생각 모음 (191)

 

1. 대구에서 연구하는 기계가 작업중에 멈춰 서는 문제가 다시 발생되었다. 그런데 그 상태가 더 심각해졌으므로 모터를 높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 오산 출장의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다음 출간할 책으로 「오산 출장」을 수정하는 중이었다.

 

  그 당시 너무도 힘들어서 병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오산 출장 중에 발생되었던 기계의 이상 부분을 아주 최근에야 해결할 수 있었다.

  '5년 이상이나 발생하던 문제점을 확실히 고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성금했던가!'

  다시 똑같은 문제로,

   '대구 출장을 답습하게 될 줄이야!'

 

  오상 출장으로 해결되었던,

  '모터를 두 배가 높은 것으로 교체하는 것' 이였다. 하지만 지금 대구 기계는 그렇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늘 출장은 현장에서 기계를 사용하면서 문제를 진단하였지만 멈추게 되면,

  'err 17'

  'err 32'

  이라는 에러 메시지가 화면에 떳다.

  참고로 에러가 뜨면 정지가 되면서 전원을 껏다가 켜야 에러가 사라진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작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서 드라이버를 교체하여야 할 듯 싶었다.

  오전 11시 까지 기계 가동을 해보고 내린 결론은,

  "월요일 다시 올께요!"

  하고 일단 은 철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품을 갖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월요일 다시 출장을 나와야 할 판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계의 문제가 되는 부분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 내지 못하겠다. 월요일에 다시 출장을 나올 때는 몇 가지 부품을 준비해야 할 듯...


 어제의 대구출장으로 심리적인 불안을 오늘은 해소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내일 다시 출장을 나가서 직접 부딪혀 보고 원인을 분석하여 고쳐주기 전에는 지금의 불안은 사라지리 않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내 고민이 잠재되어 도사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직장 부딪혀 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생각만으로 할 수 없었다.


~~~~~~~~~~~~~~아래 그 중 3분의 1 내용~~~~~~~~

 

1. 다시 대구 출장을 나간다. 현재 시각 오전 6시 45분 옥천역에서 하행선 무궁화호 열차에 탑승을 했다. 날씨가 흐리다. 구름은 끼지 않았는데 맑게 개이지 않은 흐리멍텅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지의 산마루가 굴곡을 형성한 체 차창 양쪽 편으로 계속하여 물이 흐르듯이 지나쳐 간다. 가까운 사물은 빠르고 먼 전경들은 느리기가 하였다. 그러면서 혼탁한 하늘 따라 온통 밝지 않은 빛으로 뒤덮였는데 마치 커튼이라도 뒤집어 쓴 느낌이다.

  엊그저께 군서의 산밭에 가 보았는데 보리를 심어 놓은 밭에 듬성듬성 자란 푸른 싹이 그다지 잘 자라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는 제대로 수확을 걷을지도 의심이 들 정도였다. 지난 가을에 심었던 것이지만 산비둘기가 씨를 모조리 쪼아 먹은 게 틀림이 없다. 이렇게 싹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까? 내려오면서 동네에 사는 F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자기가 경작하는 밭에서 산새들이 울콩(일찍심는 콩)을 심어 놓았는데 모조리 쪼아 먹었다고 투덜거렸다.

  무궁화호 구내의 스피커를 타고 영동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내가 직접 운전을 할 때와 다르게 열차를 타면 너무도 쉽고 간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2. 포항의 구롱포 해안에서 군 생활을 하던 예전의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뒤바뀐 환경 탓이다. 어떻게 된 것인지 이곳도 지형이 너무 바뀐 듯하다.(다움 지도 검색을 통하여 찾아보았을 때)

 

3. 차창에 비가 뿌려 댄 것을 보니 비가 올 것 같다.

  ‘모든 게 개떡 같다.’

  아내는 개떡을 자주 만들었는데 올 봄에도 쌀을 불려서 찐 뒤에 방앗간에서 빻아 왔고 그것을 미리 만들어 놓았던 쑥가루와 혼합을 하여 송편을 빚었는데 속고물로 달콤한 흑설탕을 넣었다. 그 떡을 나는 몇 개 집어 먹은 것 같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는 싫증이 났고 몸 생각을 하여 먹지 않았다. 중년이 되면서 유난히 몸에 싫다는 음식물을 조심하는 경향이 많아 졌다.

 

4. 대구의 S.G에 납품한 기계.

  이 기계로 인하여 발목을 잡힌 꼴이었다. 예전에 오산출장처럼...

  오랜 시일이 걸려서 오산 출장의 문제점이 해결된 듯싶었지만 지금 또다시 다른 곳에서 새롭지만 그때와 다르지 않는 동작이 멈춰버리는 문제점으로 인하여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이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다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될 듯싶었다.

  왜, 한 대의 서보모터를 부착했을 때와 두 대의 서보모터를 부착했을 때의 상황이 다를까? 이 부분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무엇보다 해결점으로 제시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다.

  정말 짜증스러운 부분이었다.

  ‘우선 도란스(트랜스)의 등장이다. 현재는 220V 단상으로 입력된 것을 3상 220V로 병경할 필요가 있었다. 단상 전원을 삼상 전원으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트랜스가 필요했다. 그래서 서보모터의 전원 선을 것을 세 개로 연결하게 되면 훨씬 출력이 높아지지 않을까?’

이 부분이 크게 부각된 이유가 자꾸만 에러가 발생하게 되면서였지만 사실상 중고 서보모터를 구입하여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문제점의 부각이라고 할까?

두 개 중 한 대는 불량이라고 하면 사용할 수 없지 않을까? 또한 서보모터를 구매하여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였던 부분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나는 그대로 간과하고 있었던 것같다.

  “ERR 17”

  "ERR 32"

  수차례 에러가 반복해서 나타났는데 이 부분을 찾아 보았는데 두 개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하여 나는 훨씬 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5. 너무 바쁜 게 사실이었지만 그에 따라 돈은 생각만큼 벌리지 않았다. 엇그저께 대전에 나가서 노트북 수리를 맡겼었지만 전혀 고치지 못하여 단념을 한 상태였고 그 후 오정동과 대화 공구 상가에서 재료를 구입했는데 이백만원에 육박하였다. 다음 기계에 사용할 부품들이었다.      

  30mm 미각기 마르모, 1kw 기어드 모타 두 개, 에어 부속, 얼마 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지출할 수 있다니...

  여러모로 보나 그나마 남아 있던 돈이 줄자, 나는 위기를 느낀다.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안될 듯이 다시금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재작 의뢰가 들어온 만큼 일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지만 아내와 둘이 작업하는 관계로 그다지 능률을 보이지 못하였다. 어제 깍은 칼날을 축은 이미 황삭을 해 놓았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시간을 많이 소요하는 느낌이 들었다.

 

6. 만물이 소생하는 봄.

  여행을 하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너무 기계 제작에 관한 본업에 치중하게 되어서였다. 기계 제작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소화해 낼 수 있는 한계는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충분히 무마하려고 열심히 하려고 해도 능률적으로 기준에 못 미치는 경향이 많았다. 그것은 복병처럼 불쑥 튀어 나왔고 발목을 잡게 되었다.

  그래서 엊그저께 대전에 나가서 기계 물품을 구입할 때 D.H가 근무하는 곳을 찾아 갔었다. 그렇지만 자리에 없어서 만나보지는 못했다. 

  내가 작업하는 이 현장.

  불편한 작업장.

  너저분한 분위기. 마구 흩어져 있는 연장과 정리되지 않은 작업도구들. 그리고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환경 요소들.

  그가 내게 취한 환경에서 과연 동화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문제가 갑자기 머리 속을 어지럽게 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수입으로 사람을 고용하지 못하여 지금까지 아내와 단 둘이서 작업을 해 왔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앞질러 왔다. 지금의 수입으로는 사람을 둘 수 없었으므로 다른 방법을 통하여 고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어야만 했다. 그 정도로 심각한 현재의 내 수입을 염려하여 아내조차 급구 만류하였다.

  물론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는 것도 때로는 부족할 때가 많았다. 작년에도 적자를 면치 못하였지 않은가!

  여기서 내가 가장 염려했던 부분이 드러난다. 사람을 한 명 두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기계 주문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해결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D.H를 찾아간 내게 떠오른 생각은 참으로 어려운 현장의 분위기였다. 천막으로 쳐진 지붕은 수리를 요하였다. 바닥은 잡다한 부속품과 쓰레기(용접봉, 그라인더 돌가루, 잘린 전선 조각, 잘린 에어 호수, 그밖에 나무 보일러를 떼면서 나온 재, 검은 그을음, 드릴머싱 바닥에 너저분하게 깔린 기리꼬, 밀릴머싱에서 깍여 나온 쇠가루, 기름이 묻어 버리고 엉겨 붙은 기름통 옆의 전경)

  아. 이런 작업장에서 그를 불러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정응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월급이었다.

  D.H가 현재 근무하는 작업장은 내가 있는 곳과 환경이 비슷했다. 그렇지만 이곳은 종업원들이 몇 명 있었으며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D.H에게 몇 번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번번히 전화 번호가 바뀌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예전에 신탄진의 한국이연에 근무할 때 몇 번의 대화를 하였었다. 우연히도 그를 찾게 만든 계기는 어디에 있었을까?

  내가 동양금속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를 불러 들였을 때에도 우린 하나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일까? 적어도 그를 마음에 들어 했던 건 아니었다. 무언가 마음에 끌림이 있어서라고 할까? 어쨌튼 내가 동양금속에서 그를 마음에 두고 불러 들였고 집까지 찾아갔으며 이직을 권유했을 때도 그는 순순히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근무하던 회사에서 같은 부서의 반장에게 그런 제안을 하게 되었고 그를 불러 들이는 데 성공을 했었다. 그 뒤부터 그는 내가 있는 곳에서 공무과의 금형부에 근무하게 된다. 이 회사가 부도가 나서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 사업을 차렸지만 그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영세한 회사로 들어 갔다.

  내게 필요한 사람을 구하는 것에 신중을 기하는 건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었다.

  앞으로의 D.H와 함께 근무하게 될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내게 뾰족한 발전이 없다면 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힘들 수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엄청난 비중을 갖게 하였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방법의 모색은 무엇일까? 적어도 여기서 한 사람의 종업원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어야만 하는 문제가 가장 컸다. 그것을 안정화 시킬만큼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만 했으므로...

  그래서 내가 있는 곳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그와의 동반자로서의 생각을 깊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를 원망할 수도 있었다. 우린 적어도 같은 목적을 갖고 행복을 추구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아, 이럴 때 CH.J 가 있었다면 그라도 선뜻 와 있어 달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내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외면한 채 혼자서 너무도 힘들게 살아 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너무도 한심한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어렵게만 살아 왔는지…….

  “한 사람을 써야겠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저쪽에서 나오는 임대료를 나를 줄 수 없어! D.H에게 봉급으로 주게…….”

  “왜, 그렇게 해야 하죠! 그 돈은 이미 내 돈인데…….”

  “사람을 한 명 써야 해서…….”

  “안 돼요!”

  일언지하에 그녀는 거절을 한다.

  “이제 아이들도 대학교는 모두 마쳤잖아! 그래서 이제 우리들도 사람 한 명 써서 일하자!”

  이런 경우 인덕을 들먹인다. 주변에 친구가 없이 지금까지 혼자 꾸려 나왔던 영세업소에서 나는 많은 시간을 소진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이 말을 선뜻 꺼내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말하여 의향을 타진해 보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비록 아내에게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였지만 그럴 만도 하였으므로 전혀 서운하지도 않았다.

  D.H와의 관계가 지금까지 상황과 정반대 쪽으로 유지되어 왔었다. 사실상 그가 나를 찾아올 일은 없었다. 내가 조금 일이 많아지면 한계에 부딪혀서 찾아보곤 했었으니까? 우리 관계가 지금까지의 경우와 전혀 다를 바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속될 것이지만 조금도 다르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찾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 전에는 D.H의 휴대폰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연락을 하지 못했던 차였다. 

  앞서도 말했듯이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고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만용(?)을 부렸다고 할까? 마누라는 내게 핀잔을 할 것이다. 내가 D.H와 가까워져서 그에게 돈을 쓸 때마다. 눈을 부라리고 쳐다보았고 잔소리를 늘어 놓을 테니까?

  딴은 그랬다.

  자기에게 잘하는 것,

  자신에게 그 절반을 잘해보라고...

  이 문제가 항상 발목을 잡았는데 그런 사실조차 숨길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숨김을 가장해서 아내에게 털어놓지 못한 많은 사실들을 나는 필요 이상으로 모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숨길 수 있다면 그게 편하였으니까?

  하지만 대구로 출장을 가는 내 마음은 우울하기만 한데…….

  사람들은 너무 겉치레만을 추구하는 듯하였다. 건물을 지을 때도 조립식과 목재로 짓는다. 그렇다고 번듯하게 규정(?)을 다 지키면 너무 비싸게 비용이 추가되므로 조금이라도 값 싼 방법으로 단축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예산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훌륭한 건물이 될 수는 없어 보인다. 겉치레만 한 것일 뿐…….

 

7. 김천을 지나면서부터 승객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대구역에 도착하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신의 추구함을 따라서 이동을 하려고 기차에 탑승을 하였을 터였다. 내가 가는 방법과 우연히 마주쳤을 것이고…….


 

8. 이제 다시 돌아가는 길이다. 왜냐하면 기계전인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여 다시 월요일에 와 야했으므로……. 여기서 그 중요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였는데 그것 때문에 이유를 알지 못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에러가 자주 나는 부분에 대하여 우연이지만 가장 중요한 때에 이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여기서 새로운 사실이 중요하다면,

  ‘왜, 오산출장 때처럼 자주 이 문제점이 제기되지 못하였는가?’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해결하여야만 하는 전환이 필요했다.

  의정부의 D.S과 부산의 T.Y에서 그동안 그렇게 문제가 반복되었던 부분이 일시에 해결되었으므로 매우 반가웠지만 반면 대구의 S.G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 골아서 터질 지경에 이른다.

  ‘그 전에 일어나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왜 발생되었을까?’

 

  반가운 점은 의정부의 D.S 기계였다.

  이 기계가 오상출장 중에 문제를 일으켰던 그 기계였던 것이다. 중요한 사실들은 에러가 발생하는 문제였다. 이 해결을 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나열해보자면 우선 중심축이 흔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신빙성이 없었다. 놀랍게도 전에 발견되었던 여러 가지 이유들이 지금에는 해당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서보 모타의 출력을 아무리 높여도 에러 발생이 지속된다면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경황을 비교 검토하여도(머리 속으로) 반드시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자꾸만 새롭게 부각되는 문제점을 나는 다시 한 번 나열해 본다.

  1번 모터, 2번 모터를 예를 들자!

  맨 처음에 1번 모터가 중도에 멈추었는데 가끔씩 그런 경우가 있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용량이 높은 모타와 드라이버를 교체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2번 모터가 문제점이 발생되었다. 계속하여 멈춰 섰다. 그래서 2번 모터와 1번 모터 모두 1kw에서 1.5kw로 바꾸게 된 것이다. 15일 동안에 몇 차례나 출장을 갔다왔는데 멈춰 서는 현상이 그대로 연장되었다. ``오늘 다시 찾아가서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에러 17번과 32번이 번갈아가면서 떴다. 워낙 자주 일어나서 도무지 작업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l 그래서 오늘은 입력 쪽의 전력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다시 월요일 와야만 할 것 같았다.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우선 서보모터 쪽의 전선을 교체할 예정이다. 드라이버도 교체하고…….(2014년 2월 중에…….)

  친구라는 존재가 이렇게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라고 보아지진 않았었다. J.M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고부터 이제는 영영 만날 수 없게 된 입장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필요하여 지금 당장 함께 동업을 한다고 해도 나눠 가질 수 있을 만큼 풍족하지 않다는 데 어떻게 함께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처럼 고독하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결국에는 혼자서 부딪혀 나가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해도 함께 하기로 했던 예전의 동업 관계가 지금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D.H 와의 관계.

  한국이연에서 함께 근무했을 당시와 내가 그를 불러 들여서 D.Y에서 함께 했었지만 그다지 필요관계는 아니었다. 우리는 무슨 목적으로 함께 생활할까?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가 내게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처럼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의견 차이가 났을 터였다.

 

  8. 놀라운 점들은 두 사람의 관계였다. 내가 그를 필요로 한다고 아무리 원하였지만 서로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임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을 지급해가면서 그를 고요할 수 없었으므로 관계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