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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청성의 밭에 간다. (4)

2013.08.08 12:51

文學 조회 수: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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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까지는 아침마다 구읍과 가화리의 밭에서 풀을 메었는데 오늘은 모처럼 청성의 밭에 갔다.

  팥, 들깨를 심어 놓은 밭과 아무 것도 심지 않은 논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나마나 논. 밭에는 풀이 많이 자랐을 게 틀림 없었다. 콩을 심어 놓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250평 논에는 사람키만하게 풀이 자라 있다. 은근히 내 자신에 대한 화가 난다. 차에서 예초기를 내려 등에 짊어 메고 250평의 논에 들어찬 풀을 깍기 시작했다.

  "웽, 웽... 웨웨엥!"

  예초기를 풀을 깍을 수 있게 언제나 준비를 해 두웠다. 기름이 남은 상태가 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쓰기 위해 기름을 차단하는 벨브를 잠구고 다시 몇 번 시동레버를 당겨서 가동시킨 뒤에 스스로 꺼질때까지 가만히 놔두는 것이다. 다음에 쓸 경우에는 벨브를 열고 시동 레바를 몇 번 잡아 당기면 켜졌다. 기름으로 카프레타가 막히게 되면 청소를 하고 다시 조립을 하여 한결같이 엔지을 켤 수 있는 준비를 해 두는 게 비결 같았다.

  "고장이 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예초기를 중고로 11만원을 주고 구입할 때 내가 그렇게 질문을 했었다. 처음 사용하는 기계였으므로 그 때 주의할 점을 묻어 보았는데,

  "연료가 남지 않게 마지막까지 태우세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그렇게 해 두는 게 최선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문제)는 고장이 나지 않는 게 비결아니겠는가!

 

 예초기를 사용하는 것도 팔 힘이 대단히 든다. 또한 다치지 않게 주의해야 하므로 언제나 시야를 날 끝에 두게 된다. 나는 예초기 날을 쓰는게 아니고 둥근 원형톱을 사용했다. 물론 예초기 날과 둥근 원형톱은 장단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둥근 원형톱날을 끼우게 되면 날끝에 칩이 붙어 있어서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나무가 잘린다는 점이었다. 또한 굵은 가지가 있는 콩. 들깨 같이 단단한 줄기도 예리하게 자를 수 있었다. 하지만 예초기 날처럼 짧고 빠르게 자르는 데는 좀 부족했다.

 

  예초기로 풀을 깍는 것이 팔힘을 무척 들게 하므로 얼마나 오랫동안 내 젖느냐:에 다라서 그만큼 체력적으로힘이 든다. 특히 아침 햇살이 강력하게 내려 쪼이기 시작하자 땀이 비오듯 흐르고 온 몸에 모두 베어 들면서 그만큼 피로가 가중되었다.

  목이 마르기 시작하고 땡볕에 서서 팔로 날 끝을 조종하여 풀을 자르는 게 자연 더디게 되었다. 이럴 때주의하지 않으면 다칠 수도 있었다. 그만큼 느슨해 진 집중력 탓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날을 풀에 갖다 대었다. 간혹 땅에 닿고 돌에 걸리기도 한다.

 

  예초기로 1시간 넘게 작업하면서 내 체력이 매우 튼튼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다져진 체력에 대하여 나는 의외로 다행스러워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른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팔 힘이 좋아졌다. 늘상 풀을 예초기로 깍다보니 이골이 난 것이다. 그 전만해도 농사 일이라고는 할 생각도 않들었지만 지금은 농사 일에 재미가 들렸다. 그렇지만 햇볕이 뜨고 난 뒤에는 예초기로 풀 깍는 것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면서 힘이 든다. 

 

 논의 풀을 모두 베고 난 뒤에는 이번에는 조금 떨어진 밭으로 갔다. 그렇지만 예초기로 풀을 깍는 것조차 힘이 들어서 내일 다시 오기 위해 한바퀴 둘러 본다. 470평의 우리 밭에는 팥을 심었고 그 위의 대략 400평의 다른 사람 밭에는 들깨를 심었는데 풀로 가려져 보인다. 그렇지만 팥을 심은 우리 밭은 내일 제초제를 고랑마다 뿌리겠지만 위의 400평 밭은 들깨도 나오지 않은 상태로 풀로 엉켜 버렸으므로 예초기로 깍아줘야만 할 것같았다. 

 

  이런때 함께 따라 오지 않은 아내가 야속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이런 전경을 보여주지 않는 게 오히려 더 궁시렁 대지 않을테니까?  그렇지만 풀을 뽑아 줘야 하는 곳은 손으로 직접 뽑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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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궁촌재 정상의 휴게소에 잠시 범췄다. 자주 다녀었지만 지금까지 멈춰서서 사진을 찍을 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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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에서 청성.청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궁촌재를 넘어야만 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갯길을 옥천쪽에서는 다행이 높지 않았지만 청성.청산 쪽에서는 매우 가파르다.

 

  오늘은 돌아오는 길에 궁촌재 휴게소에 들녔다. 혼자서 청성으로 내려 갈 때와 이렇게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기분은 사뭇 달랐다. 궁촌재를 내려서면 청성이었고 올라서면 옥천이라는 인식 때문일까?  

 

아직 때묻지 않은 청성의 시골 냄새를 나는 어느때부터인지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성까지 가는 게 만만치 않았다. 옥천에서 대략 12km 거리를 차를 갖고 가는 것부터가 그다지 환영할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밭이 있어서 그것을 활용하여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 이제는 풀을 메 줘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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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촌재라는 팻말이 휴게소에서 바라 보였다. 말끔하게 단장한 휴게 시설은 고작 의자 몇 개와 차량을 세워 놓을 수 있는 공터가 고작이었지만 차량을 세우고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청성의 전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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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성에서 팥과 들깨를 심어 놓은 밭을 메지 못했다.

봄에 보리를 심었다가 실패를 본 뒤에 내방치하여 두웠던 논에 자란 풀을 예초기로 모두 베어주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태양이 뜨자 너무도 무더워서 땀이 비오듯이 났다. 그런 와중에 예초기의 엔진소리만이 조용한 골짜기를 울려 퍼진다. 너무나 방관하여 두웠던 논을 올 가을에 양파를 심을 것인데 너무나 풀이 무성했고 바닥은 위에 논에서 흘러내린 물로 젖어 있었다. 물빠짐이 놓지 않아서 물이 고인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다시 고쳐야만 하였다. 그것은 인력을 필요로 하였는데 의외로 농사를 짓지 않아서 그만큼 배수관리가 허술함을 알게 되었고 봄에 경운기로 개간한 후에 흙을 옮겨 놓아서 조금은 마른 땅이 보인다. 내년부터는 물빠짐을 더 좋게 하여야 할 듯하다. 아니 다름에 올 때는 하수도 2중관을 몇 개 싣로 와서 묻어야만 할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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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내가 차를 세워 놓기 전에 다른 차량 한 대가 서 있었고 세 사람이 탁자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못적으로 왔고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지는 알바 없었다. 그렇지만 나보다 더 나이가 들지는 않아 보였지만 훨씬 더 노약했고 몸이 날렵하지 않았다. 그에 반하여 나는 제법 활동력이 강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무척 좋아진 체력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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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청성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곳 길을 따라 계속가다보면 목적지가 나타났었다. 아래는 청성면으로서 다시 거포리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 청성-안남 쪽으로 갈라지는 길을 타야 했다. 다행히도 청성면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거포리였다. 

이 휴게 시설은 청성면에서 해 놨을 것이다.

 

  청성면에 나는 이전 신고를 하러 갈 때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 정도의 면사무소를 보았었다. 사람을 그립게 하는 모든 시골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은 왠지 사람을 끌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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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범위를 넓혀서 청성의 밭으로 풀를 메러 간다.

그곳에 콩과 들깨를 심어 놓고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서 풀이 뒤덮여 있을 것이다.

 오늘도 아내는 함께 가지 않는다.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지레 회피를 하곤 했었다.

  "다리가 더 아프면 나만 손해지요!"

  "다리 아픈 것하고 밭 메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야?"

  "꾸부리고 앉아서 풀을 메다 보면 절로 다리가..."

  "지랄하고 있네! 하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뭔, 변명?"

  "요즘 장단지가 쥐가 나고 아파서 그만 아무 일도 못한다고요!"

  그렇게 중얼 거리는 게 싫어서 또한 놓고 다닌다. 함께 와서 조금 도와주면 어디 덧날까?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었다. 엄연히 하나의 인격체(순전히 재미로 웃자고 하는 표현)여서 내 임으로 조정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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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