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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관정(샘) 건물에서...

2013.07.05 14:38

文學 조회 수: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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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전에 청성에서 잠을 잘 때였다.

 

두 평 남짓한 건문 내부에 농자재까지 들어차 있었으므로 누울 자리를 마련하는데도 다른 짐을 옮겨 놓아야만 했다. 머리쪽에는 지하 200여미터의 관정이 배관으로 뽑아져서 동쪽 벽쪽으로 ㄱ자로 굽어져 벽을 뚫고 나갔는데 150mm 관은 됨짓했다.

천정에는 환기를 위해 정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뚜껑으로 막힌 상태였고 출구를 제외한 3면의 벽은 샷시로 된 알루미늄 유리창으로 굳게 밀봉하여 실내는 후덥지근하여 누워 있자니 무덥기만 했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 놓고 잠을 청하려다가 으쓱한 한기에 다시 문틈을 세 개 모두 조금만 열고 닫았다. 

  온갖 종류의 소리가 들려온다.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멩꽁이 소리.

  이름모를 새소리.

  허수아비에 달아 놓은 캉통소리. (사실은 허수아비의 몸이 줄에 걸려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였다. 알루미늄 판으로 사람형태로 만든 것을 줄에 걸어 놓았으므로 바람에 휘날리다가 줄에 부딛힐때마다 소리를 내었다. 낮에는 희고 반짝거리는 빛이 사방으로 휘날리듯이 바람이 불때 율동을 치는 것같기도 했다)

  그런데 실내에서 들려오는 바스락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쥐가 있음에 틀림없는 소리였다. 

 

  실로 오늘 있었던 일은 많은 시사를 준다. 차량이 빠졌으므로 해서 불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두 시간 정도 밖에 경운기로 밭을 갈지 못했는데 예상하고 많은 차이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쯤 밭을 전부 다 갈아어야만 했다. 그런데 부득히 농로에서 차가 빠졌으므로 두 번에 거쳐서 시도를 하다가 1톤 화물차에 실려 있던 모든 물건과 경운기까지도 내려 놓고 빈차를 유압작기로 떠서 뒤바뀌에는 돌과 흙을 메꾸고 앞바퀴는 경운기를 싣고 내리는 사다리를 끼워 넣은 뒤에 빠져 나올 수 있게 되었었다. 또한 유압작기로 차량을 들어 올리려다가 삐져서 빠져 나오는 바람에 차량의 튀어나온 고리에 등을 맞아서 그 충격으로 꼼짝달짝하지 못할 정도로 상처를 받았었다.

 

  지금 누워 있는 중에도 등이 눌리는 곳에서 온몸을 감전사고라도 일으키듯이 찔어대는 통증으로 신음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경운기로 밭을 갈았었다. 밭을 가는 중에 검고 시커멓게 생긴 곤충이 여러마리 내게 달라 붙기 위해 날아 다녔는데 나는 그것이 어렷을 때 산에 매어 놓은 소에게 달려 부터 있던 커다란 피를 빠는 곤충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몸에 달라붙자마자 달아 나듯이 온몸을 털고 손바닥으로 내리쳐서 잡곤했었다. 날개 소리가 얼마나 크고 높은지 왕벌처럼 느껴질 수 있을 정도였지만 자유자제로 날아 다니는 모양이 제트키처럼 빠르고 날카로웠으므로 나는 기겁을 할 정도로 피해 다녀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 곤충에게 흡혈성이 있어서 달려 드는 것이지는 알 수 없었다. 무릎에 달아 붙으면 손바닥으로 쳐서 떨어트려 죽여 버리고 경운기를 빨리 몰아서 재빨리 벗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곤충들의 습격은 그다지 유익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 날에는 더 많은 중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작열하는 데도 불구하고 (소나기가 쏱아지는 것처럼) 태양빛을 그대로 온몸으로 받으면서 경운기로 밭을 갈고 '콩심는기계'로 팥씨를 심게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일은 얼마되지 않고 힘도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비오듯이 땀을 흘리고 몸을 축내야만 하였을까? 그것은 전날 몸에 입은 상처로 말미암아 등에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통증을 무릅쓰고 밭을 알아야만 했으며 팥씨를 모종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땡볕에 노출된 상태에서 기진맥진한 게 모든 기력을 소모하게 하지 않았던가 싶었다.

 

  농사 짓는 밭이 모두 3000평 내외나 되었는데 아마도 모든 농사가 2모작이었으므로 곱이 늘어 나게 된다. 그것을 경운기로 밭을 갈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늘어 나게 된 것은 지인들의 소개와 권유와 맞물려 필요에 의해서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건강에 관계되는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라고 할까? 하지만 그 농작물만을 재배할 수 없었다. 작물에 따라 계절적인 요인이 존재하여 순리를 어기게 되면 씨앗만 더 소요될 수 있었다는 것을 작년에 경험으로 알았으니까? 그래서 올 해는 다른 시기에 적당한 다른 작물을 파종하였는데 필요한 작물과 중복되지 않아야만 했다.

 

  그래서 청성의 밭에 팥 씨를 심게 되었으므로 무리를 해서라도 밭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 시기란 놓치면 더 이상은 기회를 바랄 수도 없었다. 내년으로 넘어가야 하니 안달을 내서라도 무언가를 심게 된 것이다. 

  적당한 기회.

  아무래도 작물을 재배하는 데 있어서 시기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농사철에 철이른 작물만큼 비참한 건 없었으니까? 너무 늦게 심게 되면 수확을 기대할 수 없었지만 이제 그 기대만큼 작물을 심을 수 있다면 풍작을 기원할 수도 있으리! 

  농사는 그만큼 자신을 투자하는 것이 필요했다. 비록 수확에서 얻는 금전적인 보상을 얼마되지 않았지만 더 많은 육체적인 노력과 최고의 인내력을 요구했으므로 기꺼히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농부의 마음은 자신의 노동을 피할 수 있을만큼 모질지 않았으므로...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