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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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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디어 10여 km의 거리를 추레라가 달린 경운기를 1톤 화물차에 싣고 충북 옥천에서 충북 청성까지 갔다. 그리고 차량은 아래쪽에 세워 놓고 밭에는 경운기를 몰고 올라 간다.

  "털(tal),털(tal), 털(tal)... 털(tal)...."

  1단으로 4륜을 넣고 오르면 후륜에서 밀어주는 힘이 느껴진다.

  경사로에서 앞 바퀴로 끄는 힘으로 오를 수 있는 한계가 불과 20% 라면 후륜은 80% 나 될 수 있다.(순전히 내 의견)

  왕성하게 뒤에서 밀고 올라오는 힘 탓에 앞의 핸들레버를 잘못 조작하면 방향을 틀기 골란한 정도가 되는데 이때는 꺽어진 핸들을 더 이상 바로 잡기 보다는 후진을 한 뒤에 핸들을 바로 잡고 다시 전진하는 게 가장 유용했다.

뒤에서 밀고 올라오는 힘으로 핸들조차 틀기 어려울 정도가 되는 데 그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경사로를 오를 수 있었다. 아마도 어떤 장애물도 거칠게 없을 정도였다. 자칫하다가 산비탈에서 바위에 부딪히게 되는 경우 타고 오르다가 전복될 수 있었다. 적절한 힘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은 농기계의 조작을 어렵게 튀어 나온 좌우측 핸들 밑에 부착된 레바를 당겨서 회전력을 바퀴축에 전달하게 되는데 핸들을 돌리기보다 레바를 당겨서 동력을 끊어 주는 것으로 방향을 틀게 되는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경사로을 잘못하여 밀고 올라가게 되면 기울어져서 전복되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을 불을 보듯 뻔했다. 이것이 경운기와 자동차의 조작이 전혀 틀린 점이었다. 

 

  청성까지 추레라가 달린 경운기를 1톤 화물 차량에 싣고 온 것은 보리단을 직접 싣고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지게을 져서 날라야 하였으므로... 처음에는 반쯤 화물차에 싣고 달리는 경운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경운기와 추레라를 실을 수 조차 없었다. 그만큼 길었으므로... 그래서 옆집의 농기구 센타의 사장 동생이 권유하게 된 것이 반쯤 싣는 것이었다.

  "경운기 앞대가리만 실어요!"

  "그래도 됩니까? 뒷차에서 후미등을 보지 못하는데..."

  "물론 고속도로는 진입할 수 없지만 일만 도로는 주행이 가능합니다. "

  나는 그 말에 처음에는 의아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짐칸이 달린 경운기를 전체가 실린 수 없다면 앞 부분만 싣고 취에 부분은 그대로 둔체 두 바퀴를 지면에서 주행 시키면 된다는 사실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무척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가까운 거리는 그러헥 하고 다녔었다. 군서라던가 구읍의 밭에 갈 때는 그렇게 하여 몇 번씩 운행하지 않았던가!

  

  이제 먼 거리를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되었다. 바로 청성의 밭에 가기 위해 추레라만 지면에 굴러가게 하고 앞 부분만을 싣고 밧줄로 묶어 달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경운기를 밭에 들어가게 하여 짐을 싣고 나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많은 시간을 절약하고 노동력을 줄이게 되는데 왜 마다하겠는가!'

  오늘 마침내 짐칸이 달린 경운기를 싣고 청산의 밭에까지 도착하였다. 이 길에 추월하도록 차량 세 대 정도를 미리 보내기 위해 넓은 갓길이 나타나면 피하였다. 뒤차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사실 보리씨가 영글기까지 그냥 두웠다는 편이 나으리라!

  보리싹을 베었는데 1번을 베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밑둥이(밑부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베었는데 그것이 다시 자라서 이번에는 바로 줄기를 세우고 보리씨를 영글게 되었다. 하지만 보리싹을 베지 않은 것에 비한다면 한참 늦었고 줄기가 튼튼하지 않았으며 씨로 많지 않고 작았다. 

  욕심이란 무었일까?

  '씨 값을 절약하기 위해 보리씨를 수거하자!'

  씨가 영글었어도 이번처럼 조금 나은 것은 1번 보리싹을 봄에 수확한 뒤에 시기를 놓쳤었다. 그랬더니 그게 모두 씨가 영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밭에 갈아 엎을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씨를 수거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콘바이인이라는 농기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수확분이 얼마되지 않아서 기계를 빌린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수동 작업이었고 아내와 이틀에 걸쳐서 보리를 벨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각 모음 )

1. 경사진 밭 옆의 농로를 올라 가면서 갑자기 움푹 꺼진 곳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곳을 우회하기 우해 앞 핸들을 우측으로 약간 틀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전복될 수도 있었다. 

  옥천군 군서면에서 전복되었는 기억이 떠올랐지만 이곳은 그에 비하면 불과 100여미터의 거이에 불과했다. 군서는 그에 비하면 500여미터의 경사로를 따라 올라선 뒤에도 밭에서 또한 그런 경사가 기울어져 있는 탓에 경운기가 운행하기에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곳 청성의 밭에서는 밭에 올라서면 개활지와 같았다. 그래서 보리단을 묶어 놓은 곳곳을 찾아 다니면서 경운기 짐칸에 오후 3시 이후부터 싣고 묶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농사에 관계된 일을 했다.
보리를 베었는데 탈곡을 못하고 직접 낫으로 470평 밭에 심어진 것을 낫질로 이틀이나 걸려서 아내와 둘이서 작업하여 끝내야만 했다.

아내에게 못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내가 나보다 더 잘 해 냈으므로 계속하여 의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청성에서 작년 12월에 심었던 보리였다. 눈이 내리던 날...

그것이 보리순을 한 번 베었더니 늦게 씨가 익게 되었다. (익었다)

 

 아내에게 나는 이번 한 번만 고생하자고 당부를 한다.

  "내 년에는 콘바인으로 수확을 하고 올 해는 낫으로 베야 할 것 같아!"

  낫질을 아내가 나보다 나았다. 그렇지만 낫질을 하게 되면 연약한 아내의 손은 퉁퉁 붓는다. 그러지 않아도 어제는 마늘을 깨느라고 여간 고생한 게 아니었다.  

  '아, 농사 일을 여자들게게 있어서 고역 중에 고역이구나!'

  이건 정말 상놈의 일 같았다. 낫을 들고 쭈구려 앉아서 470평 밭을 둘이서 베고 있으려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2. 이 일(보리를 낫으로 베는 일)은 정말 못 할 일이었다. 특히 아내에게는...

하지만 이제 농사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내일의 희망이 이 일에 걸여 있어서였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1년간 나는 이제 보리 농사에 곁들어서 다른 작물까지도 재배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1년 간에 2번의 농사를 해야만 하므로 다른 작물을 심지 않을 수 없어서다. 보리가 익었으므로 시기를 놓쳐서 베 내지 않으면 인간의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농사 짓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작년에 보리만을 심으려고 하다가 시행착오를 겼게 되었던 것을 이제는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다른 작물에서 찾게 되었다고 할까?

 

3. 보리밭에 씨가 익은 보리 이삭은 크기가 중구난방이었다. 큰 것은 키워 월등나게 컸지만 작은 것은 너무 작아서 일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중간에 한 번 베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자라나서 더위로 인하여 물을 공급하지 않자 씨를 생성하기 위해 대공을 만들어서 부쩍 크게 되었는데 그것은 환경이 최악의 조건이 되어 위기를 느낀 식물이 최후의 수단으로 씨를 만들게 되는 급속도로 악화되기에 이르렀으므로 이것은 보리순을 벨 수 있기에는 부적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읍이라던가 군서에서는 보리순을 세 번이나 베었는데 그것은 가을에 한 차례, 봄에 두 차례 각각 베었던 것에 비하면 청성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물을 공급해주웠다면 씨를 생성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적인 요인이 최악으로 변했으므로 식물이 최후의 선택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씨를 생성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어쨌튼 청성에 심은 보이는 지난 12월 중순에 심은 보리와 3월의 봄에 심은 두 곳으로 나뉘게 된다. 그렇지만 12월에 심은 보리는 한 번을 베었고 그것이 이제 씨가 생성되어 다시 이삭을 베어 경운기에 싣고 온 것이다. 하지만 봄에 심은 것은 모두 실패를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물을 공급해 주지 않아서 말라 비틀어지게 되었고 바로 자라지도 못하고 모두 타들어 갔으므로 1번의 수거만을 마지막으로 모두 갈아 엎고 그곳에 들깨를 심게 되었으니...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