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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50세부터...
 2010년 6월 9일 수요일

1. 김포 마송 Y.I에 출장을 나가기 위해 대전역 뒤편의 하상 주차장에 1톤 화물차를 세워 놓고 대전역에서 7시 47분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언제부터인가 꽉 막힌 실내, 공기가 순환하지 않는 난방으로 훈기가 도는 사무실, 그밖에 전혀 다른 낫선 환경적인 요소가 다분한 건물 내부에서 나는 어지럼증을 느낀 곤 했었다. 그리고 쓰러져서 신음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리고 그런 위험한 신호를 감지하게 되면,

  ‘작년에 어지럼증으로 구토를 하면서 응급실로 실려 갔던 상황이 연출되는 게 아닐까?’하고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특히 출장을 나가기 위해 야간열차를 탄 다음 날, 점심식사를 한 직후에는 그런 느낌이 더 팽배하였으니…….   

2. 올 한 해가 무척 힘들 것만 같다.

   가장 큰 이유로는 물질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할 듯싶어서다. 임대를 한 마암리 상공장에 화재 보험을 들었는데 그게 무척 부담이 갔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더 많은 수입을 창출하는 일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으므로 계속 누적분이 쌓여서 부담이 가중되었는데 5년간 어떻게 해서든지 불입하기 위해서는 한 눈을 팔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만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기계를 만드는 일에 전념할 필요가 있었고 더 많은 기계 제작의 물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그게 가능할까?’하는 점이었다. 사실상 기계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포화 상태였고 다른 경쟁업체에서 만든 고가의 장비에 밀리는 상태였다고 할까? 아니,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살아나기 위해서는 별도로 기술 개발을 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절박한 현실과 함께 대두되고 있는,

  ‘기술개발을 또한 무엇을 뜻하는가!’하는 점이었다.

3. 가령 입체적인 생각과 3차원의 구상에 있어서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런 것들은 모두 쓰잘데기 없는 쓰레기 같은 거였다.

  다각도의 구상을 예로 들어보자!

  CNC 조각기계의 경우 과연 필요에 의하여 만들고 있지만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험난한 과정이 필요불가결했다. 당장에 현장에 응용하여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잡한 프로그램(마하, 파워밀, 캐디아, 캐드) 등을 배워서 적용을 하여야만 할 것인데 그 프로그램은 하루 아침에 배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응용을 하여 무엇인가를 창출할 필요가 있었지만 막연히 가능할 것이라는 짐작만으로는 절대로 이윤을 창출할 제품 생산은 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요원하고 먼 일을 가지고 섣부르게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기보다 본단 근본적으로 현재를 객관적으로 파난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모두가 돈을 벌 수 있기보다 연구차원에서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여기서 내가 필요로 하는 시간과 돈(자본력)에 대하여 분석해보자! 한마디로 막연하고 근거없이 떠드는 메아리 같은 거였다. 전혀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없었다. 단지 CNC조각기계 만들어서 현장에 활용할 생각이었다. 여기에서 그것을 다루는 것은 나름대로 근본적으로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캐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생각이란 먼저 앞서서 많은 분석을 하고 실험을 하게 된다. 특히 기계적인 연구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 때 더욱 그랬다.

4. 여기서 두 번째 집고 넘어가야만 하는 문제가 있었으니…….

  ‘막연한 짐작만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까?’

  현재 기계에 이상이 생겼는데 PLC의 랠레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출장을 가는 것이지만 여기저기 납품한 기계들의 출력쪽 4번 릴레이부분에서 출력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을 붙잡고 있었다. 그것을 해뎔하고 문제가 발생한 부분에 대한 조치는,

  “외부에 보조 릴레이를 부착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습니다만...”

  나는 처음에 곤란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수긍을 하고 말았다.

  오늘 출장을 나가서 Y.I과 그 옆의 다른 공장에도 같은 방법으로 보조 릴레이를 부착할 생각이다. G.J는 불과 1개월 전에 기계를 납품하였기 때문이다.

  “1년 정도된 기계에서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그럼,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단 말입니까?”

  “글쎄요? 확실한 것은 최근에 납품한 기계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된다는 것입니다!”

  “어쨌튼 한영전자의 타이머가 작동하기 위해서 한계치가 넘는 부하가 걸려서 계속하여 스트레스를 받다보는 어는 한 순간에 PLC 내부의 릴레이가 붙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예전에 PLC는 이런 현상이 전혀 없었답니다. 이까짓 타이머 하나 때문에 이런 생고생을 하다니요!”

5,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생산저인 일에 종사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지금까지의 노력과 수고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재삼 강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튼 이 문제로 인하여 앞에 있는 다른 창고의 임대를 보류한 상태였고……. 그렇다면 이 창고 건물에서 어떻게 무엇을 하여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단 말인가!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듯했다. 하지만 새로운 공장(jong_E)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본력이 필요했다. 그것 때문에 섣부르게 달려들 수 없기도 했고 또한 거래처를 확보하는 어려움이 가장 힘든 난관 중에 하나였다. 

6. 다른 무엇보다 지금의 갖고 있는 상황을 분석하여 더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가장 필요한 연구 개발의 의지와 노력 시간이었다.

  가령 시간의 경우 일찍 일어나고 늦게까지 매진하면서 CNC 조각기계에 대한 연구에 매진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지금 현재 가장 절신한 부분 중에 하나였으므로 매일 그런 의지를 불태우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기계적인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의 소프트웨어의 전문가적인 고급화와 뛰어난 능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절박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었다.

6-2. CNC 조각기계의 프로그램은  J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부분에서 변환을 시키고 적용을 시킬 때 간단한 명령문의 구사는 필수적이었다. 아직까지는 프로그램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어서 배우지 못하고 있었다. 조만간 기계를 완성 시켜 놓고 마하 프로그램을 적용시키면서 실행하게 되면 접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집중적으로 마크하게 되리라!기계의 접목과 함께 여러 가지의 생산품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건 막연한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생산품에 대하여 결정된 것은 없었다. 단지 상상만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확인한 바는 없었으므로 무척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 앞의 창고에서 기계를 설치하고 무엇인가를 시도할 필요가 있었다. 가능하다면 그것이 연구 목적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근본적인 목적에 부합하면 좋겠지만 확실한 계획은 그곳에서 소기의 목적을 위해 최선을 구구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최선을 다하고 노력함으로서 조기의 목적이 달성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고 그 목표에 가장 큰 뜻이 있었다.

그럼,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CNC 조각기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배경은 무엇인가?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고 하고저하는 목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만드는 NC 기계의 베드(몸체bed)부분을 가공할 수 있는 기계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는데 그 이유는 계속되는NC 기계의 결함으로 인하여 납품한 기계의 취소사태와 정밀도의 부정확성으로 곤란을 겪고 불필요한 A/S였다. 그런 상황하에서 기계를 납품한다는 것은 엄청난 불이익이었다. 이 부분으로 오산의 Y.H, 광주의 B, 그리고 김포 대곶의 C라는 업체에 남품한 기계가 모두 취소되는 초유를 상태를 나는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런 불이익에 대하여 과감하게 피해갈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그게 CNC 조각기계였다. 내가 만드는 NC 기계의 베드부분의 LM 가이드 설치 부분의 가공, 연마, 드릴, 탭.... 작업을 위해서 정밀도 있는 기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우선 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NC 기계를 더 이상 제작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도래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던가! 내 노력과는 무관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무력한 모습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불유쾌한 기억과 실패를 딛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CNC 조각 기계의 제작을 구상했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강구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갖고 있는 최고의 기술을 접목시킨 최고의 기계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절대적인 명제가 생겼었다.

  지금은 다른 무엇을 기대하지 말자!

  오로지 CNC 조각기계에 대한 연구에만 몰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으므로…….

6-3. 여기서 필요한 재원의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왜냐하면 기계를 연구하는 만큼 그 기간에는 수익이 없었고 계속 지출만 하다보니 돈이 바닥났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방부의 송유관 부지 매각이라는 최고의 난제가 불어 닥쳤고 벌금까지 납기하게 되어 많은 지출을 1개월 전에 당했었다. 두 번째는 마암리의 상공장(상만드는 공장)으로 임대를 한 뒤에 불안한 심리를 보상하기 위한 화재 보험의 가입으로 지출되는 가외의 부담이 지금 내 목을 조여 왔다. 아마도 그로 인하여 마지막 보루가 되는 새마을금고의 회원 통장에 있는 돈을 찾기 위해 회원가입을 탈퇴하게 될게 확실했다. 그런데도 망설이고 있다니…….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구나! 네게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망설이고만 있는 무능하고 우유분단한 성격의 소유자가 바로 나인지도 모른겠다’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새마을 금고에서,

  “회원 탈퇴하겠어요!‘하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망설여 왔었다. 아마도 내일은 새마을 금고에서 회원을 탈퇴하고 말 것이다.

7. 미약한 어지럼증은 멀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여행 중에 가장 힘들었던 2008년 2월 중의 부산 명륜동 L.K 출장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과 그로 인한 우려는 내과 병원은 찾게 만들었다.

  “무조건 연고지의 내과 병원을 찾아가서 혈압이 높다는 것과 약을 먹어야만 한다고 역설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생명이 왔다갔다는 하는 일인데 그렇게 한가할 수 있겠어요! 자신의 생명이 끊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지요! 저도 그냥 넘어가서 쓰러졌다가 지금은 죽어다가 살아난 것처럼 거동도하고 이렇게 멀쩡해 보이잖아요! 그렇지만 고혈압 진단을 받고부터는 조심하고 있어요! 언제 넘어갈지 모르니까?”

  그는 미끈하게 생긴 남자였는데 몸이 비대해 보이지는 않았다. 얼굴은 미남 형에 가까운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무엇보다 젊어 보이는 표정이 유난히 눈에 띈다. 거기다가 약해 보이는 체격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자기 신체의 건강에 유난히 민감해 보이는 태도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고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 고혈압으로 인한 어지럼증을 느꼈을 터이고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으며 거기서 위험을 넘겼다는 사실에 안도하고부터는 몸 관리에 더욱 민감하여 직장을 그만두고 과로, 음주, 흡연까지도 금지하면서 오로지 건강에만 유난히 너스레를 떨면서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실에만 유독 집착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처럼 경망스럽게 호들갑을 떨면서 말하였으므로 나는 주눅이 들었고 큰일이다 싶어 병원을 찾아가서 시키는 대로 고혈압 약을 처방받아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여 먹기 시작하였었다. 그렇지만 혈압은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8. 훈련소에서 부대에 배치 받고 난 뒤에 첫 면회 중에 아들놈은 제 엄마에게 하루 종일 놀아 달라고 주문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노트북 컴퓨터를 전날 충전 시켜 놓았었는데 들고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무료한 시간을 면회소에서 시간을 축내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여 무척 곤란을 겪어야만 했으므로 그것이 힘이 들었다. 면회를 하기 위해 1,2층 건물 한 체가 모두 면회소로 쓰였는데 2층은 식당이었고 1층에는 노래방, 닭튀김을 캔 맥주와 판매를 하였다. 밖에는 파라솔을 몇 개 세워놓고 밴치가 있었으며 주차장으로 쓰였다. 군대 면회소가 무료한 시간을 떼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과 다른 가족들이 밴치에 앉아서 점심 시간을 맞아 음식을 먹고 살겹살을 구워서 상추쌈을 먹는 것을 지켜보다가 결국 2층의 식당을 찾을 수 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25,000원어치의 값싼 비용으로 식사와 고기를 구워 먹었던바,

  “왜이렇게 싸지?”

  “면세품목이 있어서 PX에서 일회용 커피를 한 상자씩 사갔고 나오기도 하는데요?”

  “그렇군 세금이 없어서 값이 싼걸.... 오히려 밖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이 비싸게 지불하고 있는 셈인가!”

  “싸오지 않길 잘했지요 뭐!”

  얘기는 그렇게 천편일륜적인 것이었다. 아들은 군복 차림으로 마주 앉아 있었고 정원처럼 꾸며놓은 나무와 돌무더기 사이에는 잔디가 심어져 있는 정원 형태의 풀밭이었다. 그 풀밭에 놓여 있는 대 여섯 개의 원형의 탁자 중앙에 꽂혀 있는 파라솔과 그 주위에 놓여져 있던 4개의 의자에 우리는 터를 잡고 각자 앉아 있었지만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았다. 아침부터 계속 얼굴만 마주보며 얘기를 해 왔지만 뾰족하게 나아진 기색은 없었다. 단지 아들이 속한 군부대의 담장으로 둘러쳐진 면회소에서 외출, 외박이 허용되지 못하였으므로 이 면회소가 고작인 곳에서 멀뚱멀뚱 상대방을 바라본다는 것은 가족으로서 무척 곤란한 일이었다. 집에 있을 때 이렇게 마주대하기조차 힘들었던 부자지간이었지 않던가!

  멀쑥한 형태로 아들을 본다.

  제 딴에는 얼굴의 살결이 썬 크림으로 타지 않았다는 것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었다. 딸과 제 엄마는 썬 크림과 함께 각종 로션과 화장품 샘플 등을 준비해 둔 모양이다. 비닐 백에 담아 건네주고 그것을 받아 들은 아들은 연신 싱글벙글 이다.

  내게 아들이 있었던가! 언제나 겉돌기만 하던 자식에게 없느니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고뭉치였으며 청개구리처럼 반대로만 행동을 해 왔으므로 체념을 하고 살아왔으므로 그 비중을 깨닫지 못해 왔었다. 그런 자신 놈이 군대에 입대를 하였고 철없이 굴던 그런 자유스러움을 버리고 마치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달아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심정은 무엇 때문일까? 저도 나하고는 말을 하지 않았었고 내가 피하기만 하려고 못난 놈이라고 늘 지천을 해 왔었다. 군 입대를 하기 전까지도 밤에 돌아다니고 낮에 슬그머니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자곤 하던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나는 지천했었다. 그러나 이제 군대에서 그런 생활을 해 왔을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잘못된 생활인지 깨닫게 된 듯싶었다.

  부자지간에 있어서 극과 극을 치닫고 훈계만을 일관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지금으로서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엄마, 군대는 사회에서 느끼던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딴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너 군대에서 부사 관으로 장기 근무할 생각 아니었니? 그런데 지금도 그 생각이 드니?”

  “아니요! 절대로 군 생활을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여기서 내가 군대 생활을 할 때 면회를 오던 날의 부모가 생각난다. 모친은 왜 나를 찾아 그렇게 멀리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가! 얼마나 보고 싶었기에……. 아니면 내가 해안방어를 하면서 갑자기 찾아온 모친을 반갑게 맞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던가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으로서는 그것을 되새길 수 있는 것은 자식을 면회하면서 내가 겪었던 훈련소의 시절과 면회를 왔던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보임이다. 많은 점에서 차이가 난다. 면회를 찾아가는 것부터 가정환경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가에 관하여 거론하는 것은 나름대로 달랐다. 나와 내 아버지의 인생은 그만큼 별개의 문제라고 할지라도 지금으로서는 내가 갖고 있는 면회를 가는 방법은 어쩌면 힘들었던 모친의 생각만큼 모진 모습은 아니었으리라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부친으로 인하여 모친은 늘 가난에 시달려 왔으며 그것이 내게 영향을 끼쳤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9. 모친은 내게 있어서 절대적인 사랑이었다.  

  여기서 자식의 군대 면회를 갔다 오면서 모친이 내게 찾아왔던 아주 먼 길의 면회가 나에게 얼마나 감회스러운가를 상기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깊이에 대하여 내가 느낄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지 그것을 아들을 통하여 깨닫게 된 진실된 사랑을 나는 다시 한번 감사하여야만 하였다. 이것이 내가 갖고저하는 최대한의 질곡과 감뢰하였을 것이다.

  언제나 돌릴 수 없는 과거의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모친이 생존해 있는 중에 그 멀리까지 찾아 왔던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로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무엇보다 물질적으로 승용차를 타고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였으므로 모친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으로서 나는 모친의 사랑에 대하여 너무도 놀라워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을 면회하고 오면서 내가 모친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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