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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장

서울 출장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곤란을 당하여 왔던가!그렇지만 그곳에 내가 그동안 알고 지내던 많은 이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통일 전망대 앞에서... -

서울 출장 (122) 양곡에서

2009.08.27 20:55

文學 조회 수:2677

 Noname1493.jpg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양곡으로 출장을 간다.

  “기계를 좀 봐 주세요!”

  “어떻게 안 되는데요?”

  어제 H.J라는 곳의 공장장에게 전화를 받으면서 내가 물었다.

  “고압, 저압이 안 되고……. 타켓트에 닫기 전에 센서가 말을 듣지 않아요!”

  “잘 못쓰셔서 그렇지요! 하하…….”

  “와서 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내일 가지요!”


  나는 H.J라는 공장에 기계를 잘못 넣었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다. 벌써 세 번째로 찾아가는 것인데 결국에는 한 달도 체우지 못하고 기계를 회수해야만 할 것 같았다. 예감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사용하는 게 불안하고 신뢰할만하지 않았다. 예컨대 사장과 그의 아들 그리고 공장장이 기계에 신뢰를 갖지 않고 있었다. 사실상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기 때문에 작업자의 능력이 중요하였다. 거기다가


  내가 머리에 어지럼증을 느끼고 누웠을 때 가장 불편하게 느끼던 것은 계단을 내려가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질 정도로 불편했는데 손을 집고서도 내려가지 못할 정도로 서 있지 못할 정도로 어지럼을 느끼었는데 누워서 고개를 좌우측으로 틀기만 해도 토할 정도였다. 눈을 감고 한 발씩 내딛어서 내려가야만 했다.

  아내와 O.M네 엄마가 공장의 대형 문을 닫는다고 할 때 나는 누워서 있을 수 없었다.

  “공장 문을 닫아야하는데……. 어떻게 하지?”

  아내가 그렇게 말을 하자,

  “언니하고 나하고 같이 닫지 뭐!”하고 O.M 엄마가 말했다. 나는 누워서 마치 큰일이 날 것처럼 걱정이 앞섰다.


  그녀들이 밖으로 나가서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고 벽을 짚으면서 현관 밖으로 나갔으며 신발을 신고 이윽고 계단을 내려선다. 난간 대를 잡고 계단 위에 발을 딛는데 의외로 심각할 정도로 어지럽지가 않았으므로 나는 안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

  “어떻게 돼가고 있는가하고 전화를 했어요?”

오산의 Young ha에서 핸드폰을 전화를 받았을 때는 18시 13분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내가 기계를 너무 늦게 미루는 가운데 납기일인 이달 말 일을 넘길 것 같았다. 그래서 내친 김에 전화로 내용을 설명하고 연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히 핸드폰을 들고 열차 구내에서 통로를 통하여 밖의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나가서 목소리를 높였다.

“가만히 있어 보세요! 밖으로 나가서 받겠습니다.”

  무궁화 열차의 5호차 구내에서 목소리를 죽여서 받았지만 밖으로 나와서는 자연스럽게 커진다.

  “아, 여보세요! 제가 지금 열차를 타고 영등포역에서 내려가고 있는 중인데요! 전화를 못 받아서 죄송합니다.”

  “어허……. 출장을 왜 그렇게 다녀요? 전화 할 때마다 출장중이네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며칠 전에는 제가 이마를 다쳐서 머리 중앙에 여섯 바늘 왼쪽 눈가에 일곱 바늘을 꼬맸는데…….”

  “예, 어떻게 하다 그러셨어요?”

  “선반으로 쇠를 깎다가 튀어 나와서……. 요즘, 바쁘다고 매일 밤 열두 시, 세 시 그렇게까지 일을 하였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봅니다. 제가 마흔 아홉 살인데 아홉수라고 일진이 안 좋다는 말도 있고……. 그래서 그러는데 10일까지 기계를 연기했으면 싶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4.

  글을 쓰는 시간은 아주 짧다.

  그 시간을 할애할 수 있기까지 비록 얼마 되지 않은 내용을 적어 내려가면서도 집중할 수 없는 그동안의 못 다한 내용을 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허무맹랑한 얘기들. 내 얘기들을 일기체로 쓰는 형식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없이 매일 바쁘게 생활에 쫓겨 살아야만 하는가!


                  5.

  양곡의 H.Jea에서 와서 다시 기계에 관해 설명을 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오늘은 출장을 나갔지만 사실상 옥천에서 오전 5시 44분 무궁화 열차였고 영등포역에 도착한 시간은 7시 55분이라고 했지만 8시 30분 정도에 영등포역 앞의 버스 승강장에서 강화로 하는 88번 시내버스를 탔었다. 그리고 마송이라는 곳에 내렸을 때는 10시가 되었으니...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더니 영등포역에서 마송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다. 이렇게 되니 겨우 오전 10시가 되어 작업장에 도착하기 되어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기계를 가동하기에 이른다.

                  6.

  하루건너 출장을 한다. 그러다보니 일의 진척이 없었다. 아내가 부담 할 일은 전부 다했고 나와 보조를 맞춰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내용만 남았다.

내가 출장을 나가면 공장은 올 스톱이 되고 만다. 이렇게 일을 못하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을 하나 두어야만 할 것 같지만 마땅하게 사람을 쓰지도 못하였다. 그동안 아내와 둘이서 해 냈던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한다고 능률이 날지 미지수고 무엇보다 한 사람의 인건비를 부담하는 게 마땅치가 않아서일 것이다. 그만큼 한 사람을 쓰는 것조차 부담이 간다.


                7.

  어떻게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이렇게 심각하게 부각될 수 있을까? 갑자기 모든 내용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Y.I에서 수리를 요했던,

  ‘NC 기계가 완벽하게 고쳐 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도 그 이유가 베드를 정확하게 일치 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진단을 내렸다.

  H.Jea에서 기계의 작동을 시켜 보았으며 자세하게 살펴보았더니 고압 저압 중에 저압의 솔로레이드 밸브가 고장 나 있었다.


                 5.

  열차를 타고 기차 여행을 하면 모든 게 편안하다.

  내가 직접 차량을 몰고 운행하게 되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쉴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 둘 째 운전을 하다보면 무척 피곤해 진다. 운전석에 꼼짝없이 앉아 전방을 주시해가면서 엑셀레이터, 브레이크, 기어, 그리고 핸들을 조작하면서 전방을 주시해야만 했다. 기차보다 더 빠르냐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물론 거리를 비교할 때 기준이며 기차로 갈 수 있는 곳은 포함하지 않고 비교할 때 그렇다. 총체적인 것을 합쳐서 계산하자면 종합적으로 차를 갖고 다니는 게 더 빠른 편이다. 단지 기름값과 유지비가 더 드는데 이점을 고쳐하려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면서 번거롭게 다니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계산 외에 기차를 타고 다니는 것과 차를 갖고 다니는 것을 비교할 때 많은 비교가 따른다. 그래서 기차 여행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보다 물질적인 부담이라고 할 것이다. 돈이 적게 들어서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굵고 짧게 사는 게 아니고 가늘고 길게 사는 게 관건이라고 할까? 


           8.

  N.C 기계의 정밀도에 관하여....

  영일 지관에 납품한 기계는 정밀도가 부족하였다. 특히 100mm로 절단을 할 때 4번 째와 5번째가 부정확했다. 네 번째는 99.5mm, 다섯 번째는 99mm 로서 1mm의 편차를 갖고 잇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부정확한 이유가 멀까?


           9.

  내가 이마를 다쳤는데 여섯 바늘과 일곱 바늘을 꿰맸고 실밥을 집에서 빼냈다. 병원에 가지 않고 약고 먹지 않았는데 상처가 깊어서 흉터가 진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이 아프다. 내 얼굴에 흉터를 갖게 된 것은 이제 어떤 경험으로 부각되리라! 어쨌든 이렇게 흉터를 바라보면서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자! 또한 이마에 드러난 증거는 여기서 많은 점을 내게 안겨줄 것이다.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이건 재앙으로 받아들이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내 몫인 것이다. 


            10.

  컴퓨터 메인보드를 교체하였지만 STAT 용의 CD룸이 필요했다. P.C의 메임보드에 CD룸을 꽂는 포트가 별도로 장착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31,200원짜리 CD룸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런 일이 발생되었으며 그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내 무능함을 탓하면 무엇 하겠는가! 오히려 메인보드를 교체하는 수고로움 덕분에 많은 것CPU일 것이다. 그것을 고장난 곳에서 빼내어 교체할 것에 넣고 쿨러를 또한 올려 놓고 냉각을 시켜야만 했다. 그 CPU 가격은 순저히 포함되어 있지 않고 고장난 곳에서 빼내어 새로 설치하는 것에 옮겨 끼워 넣어 줘야만 했다. 비단 그것뿐이 아니었다. 메모리와 각족 연결 콘센트를 새로운 것에 끼워 넣어 주워야만 했는데 코드의 색상이 다르므로 그 옆에 적혀 있는 코드의 명과 색상으로 구분하여 끼우는 위치를 설정하게 되므로 빼내기 전에 종이에 순서를 적어 놓고 교체할 것을 조립한 뒤에 그곳에 똑같은 자리를 찾아서 연결핀을 끼워줘야만 했다. 특히 전원, 전원램프, reset, reset 램프, power, power램프... 등을 정확한 지점에 끼워 넣어야만 했다. 그런 조립 과정은 이미 설치되어 있는 메인보드에서 찾아 기록을 해야만 했고 새로 설치하는 보드를 장착한 뒤에 같은 지점을 찾아서 끼워 넣으면 되는 것이다. 사실 메인보드에 약간의 배치 관계만 다를 뿐 볼트를 끼워 넣는 위치가 같았고 뒤에 있는 마우스 콘센트, 키보드 콘센트, 랜 포트, USB 포트, 사운드 포트, 화면 포트, rs232c 포트 등의 구조와 방향이 모두 똑같았으므로 조립하는 게 단순한 것이었다.


                    7.

  흉터가 있는 내 얼굴을 들고 출장을 다니는 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못되었다. 거울을 보면 모든 게 확연히 드러난다. 얼굴에 상처가 난 부위가 아물지 않아서 아직 갈라진 틈이 보이는 데 그곳에 잘 꿰매지 않아서 어긋한 듯 고르게 연결되지 않았다. 간혹 튀어 나온 곳이 있었고 간혹 두 결합분이 매끄럽지 않게 층을 만들어서 보기가 흉하였다. 그런 얼굴을 들고 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8.

  오늘은 H.Jea 와 Y.Iil을 들렸었다.

  매끄럽지 않은 게 그다지 흠인 얼굴을 불쑥불쑥 들이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다지 밝은 인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H.Jea의 자동 절단기계는 소형으로 불과 16mm 정도의 지관(종이로 만든 둥근 원형의 관으로 말대라고 부르기도 함:역주) 으로 다른 곳보다는 조금 다르게 작업이 필요했다. 또한 기계도 소형으로 만들었으며 모든 게 작고 부드럽게 운행되었으므로 작업자가 조금만 기술을 습득하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으리라 싶었다. 그런데 절단을 끝내고 나가는 부분에서 조금 빠른 진행을 보였으므로 직진하는 솔로레이드 밸브를 끊어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저압에 부착되어 있는 솔로레이드 밸브의 전기 부분만 서로 교체하였다.

  그렇게 하여 다른 곳보다 작업 방법이 좀 색다르게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