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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Money)의 노예(slave)

돈의 노예

2005.12.09 18:10

문학 조회 수:3418



  돈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랴
  인간적이지 않은데...

  예컨대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을 나타내는 사람일수록
  착각에 빠지기 마련이다.
  제가 왕이라고...  

  안하무인처럼 세상을 바라보면서
  저보다 못한 사람을 괄시하고
  압력을 행사하려든다.
  
  길에 난 잡초를 밟고 지나간들
  그것이 깔려서 쓰러질망정
  죽기야 하겠는가
  밟히면서 더 원망하고
  경멸하기를
  '돈이면 다냐!'
  
  무릇 자신의 눈에 들은 커다란
  절구는 보지 못하고 남에 눈에 끼인
  조그만 티만을 잡아 내더라!  
  그것이 돈많은 이들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2005년 12월 9일 금요일
  -돈의 노예-


★경기도 평택시.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 평택항 건설, 미군기지 이전 등 대형 개발호재가 겹치면서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농사를 짓던 한 노부부는 최근 논을 팔아 자녀 4남매에게 5억원씩을 나눠줬다. 돈을 받은 맏며느리는 ‘돈까지 받았으니, 이젠 시부모 모시는 게 당연하게 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다.

평택은 예전부터 밀짚모자에 장화를 신은 농민이 비료포대에 현금을 가득 담아, 은행에 예금하러 오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는 고장이다. 땅값이 오르면서 같은 마을 사람들, 직장 동료 가운데서도 어느 날 갑자기 수십억 원대의 부자들이 속출했다.

이 고장 부자들의 분포 자체가 달라졌고, 자연 졸부들을 보며 배 아파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어떤 노인은 똑똑한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논 팔고 밭 팔아 대학까지 공부시키느라 달랑 집 한 채만 남았다. 자식들은 말쑥한 정장을 입고 번듯한 직장으로 출근하지만, 기껏 연봉 몇 천만 원에 목숨 거는 월급쟁이다. 살림도 늘 빠듯해 부모를 제대로 모시기가 힘들다.

그 이웃 노인은 아들이 애당초 공부하곤 담을 쌓는 바람에, 자식농사 포기하고 논밭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갑자기 땅값이 급등하자 본인들은 물론, 자식들까지 떵떵 거리며 살게 됐다. 예전에는 부러워하던 이웃 친구가 갑자기 불쌍해 보인다.

개발바람에 시골 농민도 인생역전이다. 자식농사도 새옹지마인가. 땅 부자 부모는 자식들의 효성도 지극하다. 돈이 효자도 만든다.


패가망신형
도박과 유흥, 전 재산 잃고 철창행

요즘 충남지역 유흥업소들은 밤마다 불야성이다. 천안 시내 룸살롱의 한 여 종업원은 “금목걸이, 금팔찌를 차고 있으면 영락없는 땅 졸부들”이라며 “티를 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많아, 노래 한 곡 부를 때마다 빳빳한 만 원짜리 신권이 테이블에 수북하게 쌓인다”고 말했다.

얼마 전, 1타당 1000만원짜리 내기골프를 즐기고 제주, 태국 등 국내외 골프장 및 호텔, 음식점 등을 돌며 억대의 카드도박까지 벌인 졸부 유 모씨(41) 등 3명이 검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지난해 3∼4월 경기도, 제주, 태국 등지의 골프장에서 1타당 최대 1000만원씩의 골프도박을 10여 차례 벌인 혐의다. OB라도 냈다가는 상대 골퍼보다 2타씩을 더 많이 치는 셈이 되어, 순식간에 최대 6000만원을 잃게 된다.

이들은 또 골프도박 후에도 밤늦게까지 골프장 인근 호텔, 식당 등에서 억대의 카드도박판을 벌였으며, 룸살롱·고급 술집 등을 다니며 수억 원을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건물 임대업, 주류 도매상, 예식업 등을 하는 이들은 골프장에서 처음 만난 골프친구들로서, 처음에는 재미 삼아 1타당 50만∼100만원에 내기도박을 시작했다. 하지만 갈수록 이들의 사행심은 커졌고, 태국으로 장소를 옮겨 1주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사기도박을 하면서 1타당 1000만원까지 판돈이 올라갔다.

이들 3명과 어울려 도박을 하다 거액을 날린 안 모씨(42)는 전 재산을 탕진하고, 운영하던 사업체까지 처분했다. 안씨는 검찰에 낸 진정서에서 “유씨 등 3명이 서로 짜고 내 돈을 가져갔으므로 명백한 사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사기혐의는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으며, 안씨도 골프도박에 참여했으므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즉 졸부 안씨는 골프와 도박, 향락에 빠져 전 재산을 날리고 쇠고랑까지 차는, 패가망신을 한 셈이다.


성공진행형
안정투자와 겸손함, 계속 돈 불려

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 모씨는 40대 후반의 국영기업체 부장급 사원이다. 하지만 사실 김씨는 수백억 원을 은행에 맡기고 있으며, 몇 만평의 땅을 비롯한 다수의 부동산도 가지고 있는, 일산의 숨은 알부자다.

김씨의 치부행진은 지난 1990년 일산신도시가 처음 조성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이 가지고 있던 농토가 신도시에 포함돼 수용되면서, 수십억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부친은 그 돈을 4형제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그러나 다른 형제들은 사업에 섣불리 손을 댔다가 돈을 몽땅 날리고 완전히 거덜났다.

반면 김씨는 직장을 계속 다니며 신도시 외곽의 야산과 밭을 샀다. ‘대토’식의 투자였다. 신도시가 확장되면서 그 땅이 또 개발됐고 거기서 얻은 돈으로 다시 외곽의 비교적 값싼 땅에 투자했더니, 그 땅이 또다시 개발됐다.

싼 맛에 산 맹지(진입로가 없는 땅)에서는 계획에도 없던 도로가 생겨 다시 돈을 벌게 됐다. 도로변에 카페를 차려 월 2000만원의 순익을 거두고 있다.

그의 성공행진은 재물운보다는 노력에 의한 산물이다. 갑부 내색 한 번 않고 공기업에서 15년 간 견디고 있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다. 사치나 향락은 몰랐고 자신이 잘 모르는 사업이나 투자대상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대신 값싼 땅을 사고, 은행에 돈을 맡겨 안정적 자산관리를 꾀했다.

그는 주변의 유혹과 달콤한 제안에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 친척과 친구 등 지인들에게 투자는 물론 절대 돈을 빌려주지도 않았다. 욕과 악담도 무수히 많이 들었고, 한때 모든 친지들이 등을 돌려 외톨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자신과 가족을 해코지하지 않을까 늘 불안하고, 도둑이나 유괴를 염려하여 자녀의 전학도 비일비재했다. 한때 이민생각까지 했지만, 지금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수백억 원을 자식 2명 앞으로 신탁해 두고(물론 자식들에게는 비밀), 비슷한 금액을 노후자금으로 관리하고 있다.


2%를 채워라
돈을 잘 쓸 줄은 모른다

재테크 포털 <모네타>의 필진인 이지연씨는 “부자가 되려면 ‘대박 환상’부터 깨라. 대박으로는 졸부는 될 수 있어도,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돈을 가꿀 줄 모르는 졸부는 언제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는 부자들의 습성은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겉멋에 빠지지 않고 겸손하며, 절약이 몸에 배어 있을 뿐 아니라 조급하지 않다고 한다. 귀가 얇아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돈만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도 않는다고.

이런 점에서 일산의 김씨는 졸부를 넘어, 성공한 부자가 될 가능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을까?

기자와 인터뷰했던, 김씨를 잘 아는 지인은 “그는 진짜 부자라고 보기에는 2% 부족하다”며 “돈을 벌 줄만 알지, 잘 쓸 줄은 모른다. 그만한 돈을 운 좋게 벌었다면, 기업에 투자해서 국가경제에 공헌도 하고, 어려운 사람도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졸부 생생 육성고백
“古典으로 채웠던 머리
졸부 되니 똥만 남아”

지난 2003년 2월 인터넷 한겨레의 토론방 ‘한토마’에 이색적인 익명의 게시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느 사업가의 ‘나는 어떻게 해서 졸부가 되었나?’라는 글이다. 다음은 그 원문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 재구성한 것이다.

“나는 우리 나이로 52살이 되었다. 나는 대학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유산은 지방도시에 집 한 채 뿐이었다.

(고생 끝에) 30대 후반에 대기업의 이사가 되어, 6년 하고 나와서 사업을 시작했다. 내가 20년 동안 일하고 공부한 노하우를 밑천으로 하는 업종이다.

그러나 5년 동안 돈은 들어오지 않았고, 작년에는 빚이 3억원이 넘었다. 고통은 점점 심해져서,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낯선 시골로 숨어들어가 살까’ 매일 생각했다. 집 팔아서 빚을 다 청산하면, 1억원도 안되었다. 애들은 아르바이트해서 대학 다니라고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러다가 6년 만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흑자가 났고, 금년에도 흑자가 확실한 것 같다. 빚 다 갚고도 남을 것이다. 갑자기 졸부가 되었다.

작년 초에 미얀마 골프여행, 가을에 북경, 서안, 계림을 다녀오고 12월에 태국 골프, 그리고 금년 1월에 상해, 항주, 소주, 그리고 2월 말에 또 태국 골프, 오는 여름에는 샌프란시스코, 그 후에는 터키, 이집트… . 전형적인 졸부의 모습이다.

고급 승용차가 있지만 거의 전철과 버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다닌다. 겨울에는 추워서 내복 입는 건 당근이고 베레모, 귀마개, 마스크, 면 장갑도 끼고 다닌다.

나는 누구 등쳐 먹고 돈 벌지 않았다. 수십 명의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주었다. 그리고 탈세도 하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법인만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탈세가 어렵고, 복잡하게 탈세하려고 잔머리 굴릴 필요도 별로 없다. 왜냐하면 나는 노후대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자식들한테는 18평 짜리 전세금만 준다고 해놨다.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내 머리 속에는 온통 돈, 돈, 돈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러는 내가 싫었다. 머리 속에 똥으로 가득 찬 내가. 옛날에는 내 머리 속에 고상한 동서양의 고전과 클래식 음악이 들어 있었는데…

이제 나는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내가 하는 일은 돈이나 세고 있으면 된다. 그런데 더이상 큰 돈 벌기는 어려운 것 같다.

당분간 골프나 치면서, 남은 인생 뭘 할까 생각하려 한다. 돈이 더이상 안 들어오면, 다 때려치우고 산 속이나 바닷가에 가서 살 생각이지만, 일이 없으면 심심해서 못 살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