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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보드 4.0의 일기(日記) 이곳은 '제로보드 4.0'에 있던 내용을 추출하여 되올린 곳인데... 간혹 게시판의 하단 내용에 이상이 생긴다. 그렇지만 봉사로 있다가 무려 6년만에 다시 눈을 뜬 것만 같다. 또한 글을 쓰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정도만해도 과분한 것 같다.



일제 강점기의 시작

러일전쟁과 100년 후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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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의 전개

러일전쟁은 1904년 2월 8일 일본이 인천 앞 바다 팔미도에서 공격과 거의 동시에 일본의 함대가 당시 러시아가 조차한 중국의 여순군항에 대한 기습공격을 시작으로부터 1905년 9월 5일 미국 뉴햄프셔주의 포츠머스에서 강화회의를 끝으로 막을 내린 약 19 개월 동안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초반의 여순대전 이후 육지에서 몇 차례의 접전을 벌이다가 이듬해 5월 27일, 28일 격렬한 동해해전의 한판승부로 결판이 났다. 이 동해에서의 해전에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장장 9개월이라는 피로한 항해를 마친 발틱함대는 일본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졌다.

국제사회에서 ‘미친 개’ 라는 별명으로 불린 러시아 제독 로제스트벤스키가 지휘한 러시아 함대는 대한해협 전투에서 5천명 이상이 전사하고 제독을 포함한 6천 1백 6명이 포로로 잡혔다. 발틱함대를 구성한 38척의 함선은 대부분 항복하거나 나포당하거나 도주하였으며 겨우 3척만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였다. 반면 일본은 어뢰정 3척을 잃고 사상자는 전사자 1백 17명을 포함하여 7백 여명에 불과하였다. 세계 해전 사상 유례가 없는 철저한 패배이자 완벽한 승리이었던 것이다.

전쟁 100년이 지난 요즘도 러시아의 배들은 대한해협을 지날 때 푸른 물결 위로 꽃다발을 던진다. 그 바다 밑에 가라앉은 발틱함대의 군함과 그 주위에 수천 명의 수병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곳은 내 고향의 먼 앞바다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전쟁은 세계사적으로 볼 때 매우 큰 의미가 있다. 1905년 5월 27일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국가가 유럽의 열강을 패배시킴으로써 유럽중심의 현대 세계가 막을 내린 날이다. 이 전쟁의 승패요인을 찾아서 오늘날 그 교훈을 되새겨보자.

러일전쟁의 승패요인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국력이 강해야 한다. 이는 세계전쟁사를 놓고 볼 때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국력을 결정하는 여러 요소로 놓고 볼 때 20세기 초 당시 일본은 러시아에 비교될 수 없었다. (주2)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듯이 일본이 러시아에 이겼다. 나는 여기서 국력의 요소 중 집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중력이란 주어진 기반 즉 재원을 동원하여 목표를 향해 리더십으로 이루어내는 힘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이 강한 집중력으로써 비교할 수 없는 강적과 싸워 이겼던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러시아가 월등하였으나 전비조달에서 일본이 앞섰다.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로 받은 전쟁배상금 3.6억 엔 중 2.2억 엔을 군비확장에, 1896년부터 7년 동안 예산의 약 절반을 軍費로 충당하였으며 전비 약 20억 엔 중 12억 엔을 미국과 영국의 공채로 충당하였다. 러시아는 프랑스의 (외교적) 지원을 받았지만 일본을 따르지 못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유태인 학살에 분노하여 제이콥 시프(주3) 등 미국의 유태인 인맥이 전비조달을 위해 막후에서 일본을 지원한 일화는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기술과 전략, 사기와 리더십도 승패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해전에서 사용된 양국 대포의 명중률은 비슷하였으나 폭발력에서 일본이 러시아에 크게 앞섰다. 그리고 육지전에서 일본의 아키야마 요시후루(주4)가 창설한 기병은 러시아군을 압도하였다. 군의 사기면에서 러시아군들은 오합지졸이었으나 일본군들은 사심없이 국가에 몸을 바쳤다. 러시아는 바다에서 무능한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작은 황제로 군림하였으며 육지에서 그리펜베르크와 쿠로파트킨의 알력은 패인으로 작용하였다.

러일전쟁의 국제관계

일본승리의 주역인 해전의 도고와 육지번의 노기는 달랐다. 해전에 승리한 일본의 도고는 러시아와의 대첩 전 그가 평소 군신(軍神)으로 받든 한국의 이순신 장군에게 승리를 빌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주5) 그들은 매우 헌신적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치밀한 첩보전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일본의 첩보망은 러시아 함대의 이동상황을 정확하게 포착하였다. 특히 첩보원인 아카시 모토지로는 스웨덴과 영국으로 가 좌익 지도자를 만나 러시아의 혁명을 부채질하였으며 혁명분자들에게 무기를 사주기도 하였다. (주6)

물론 러일전쟁은 여건상 처음부터 러시아가 불리하였다. 일본의 적은 오직 러시아 하나였으나 러시아는 일본 외에도 국내의 혁명세력과 지휘부와 전선의 유리, 먼 거리 항해 등 상황여건도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특히 통신시설의 낙후로 인하여 러시아 함대는 운항 중 갈팡질팡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이 크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 승패의 결정적인 요인은 당시의 국제관계에 있었다. 러일전쟁은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축(독일이 이 축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삼국간섭시에 독일이 나선 것은 러불동맹 약화와 그들의 대아시아정책 때문이었고 그것은 비스마르크 이래 유럽에서는 대립하지만 식민지 문제에 관한 한 협력하는 이른바 '식민적 제휴colonial entente' 때문이며  러일전쟁에 대한 독일의 태도 역시 러시아와 일본에게 각각 전쟁을 부추기는 이중정책이었다는 주장도 있다)과 일본, 영국, 미국의 축이 부딪힌 ‘미니 세계대전’ 이었다.

러일전쟁은 처음부터 당시 잠자는 대륙이었던 중국과 중국으로 가는 길목인 한국에 대한 열강들의 지배권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일본은 제국주의로 들어서며 중국진출의 기회를 노린다. 그러나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三國干涉’ 에 의하여 일본의 만주진출 저지에 성공하고 이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 지역으로 진출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 세력의 억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 간의 해묵은 알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러일전쟁과 동맹

유럽 왕가의 ‘무서운 아이’ 로 불리었던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독일의 숙적인 프랑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육군을 아시아로 치우치게 하는 계략으로 그의 사촌인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동방을 지배하라’(주 : 지명 <블라디보스톡>의 원뜻)는 명분을 내세워 러시아 군대의 이동을 집요하게 부추긴다. 그래서 러일전쟁이 독일 황제의 기획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은 거의 정확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문형 교수는 이러한 책략은 비스르크 이후 독일의 일관된 외교전략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랑스는 이를 반기지 않고 결국 러시아와의 동맹은 약화되고 영국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프랑스는 러시아의 로제스트벤스키의 함대가 당시 식민지인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섬과 인도차이나의 베트남에 정박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이것이 고립무원의 러시아의 함대의 항해를 더욱 어렵게 한다. 원래 러시아의 남하를 꺼려온 영국은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한반도로 내려오자 거문도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등 경계를 하다가 영일동맹으로 저지선을 확보한다. 1902년 맺은 제 1차 영일동맹은 러일전쟁 중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 작용하여 러시아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

발틱해를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려고 하였던 로제스트벤스키의 함대가 항로를 단축할 수 있던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지름길 대신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아프리카를 도는 장거리 항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일본의 동맹인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에서 영국과 입장을 같이하며 전비를 빌려주었던 미국은 러시아의 견제를 위해 일본이란 도구를 활용하였으나 일본이 전쟁에서 완벽하게 이겨 러시아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내심으로 바라지 않았다.

물론 일본과 러시아도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이 프랑스와 함께 종전을 촉구하여 강화회의를 마련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1905년 일본이 을사조약을 맺은 한국에 대한 합병이 시간문제였지만 지체된 것도 이에 대한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에 기인하였다. 이는 1907년 이후 러시아가 발칸반도로 외교정책의 중심을 옮기고 일본과 협력관계를 맺고 미국이 지지함으로써 진행되었는바 국제관계에서 힘과 동맹의 의미를 시사해주고 있다.(주7)

러일전쟁과 그 후의 세계

19개월 간의 러일전쟁은 승자와 패자의 운명을 극명하게 갈랐다. 전쟁에 진 러시아는 국민의 사기가 떨어졌으며 군대반란과 농민폭동이 이어졌다. 이는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발전되어 결국 20세기 비극 중 하나인 공산주의 정권을 탄생시켰다. 러시아가 공산주의 혁명을 불러 일으킨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당시 러시아 황실을 비롯한 지도자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한 전쟁의 패배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부패와 무능은 극단적인 변혁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우리 현대의 역사와도 유사하다.

전쟁에 이긴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남 사할린섬을 할양받고 한국지배권을 확립하고 남만주진출의 길을 확보함으로써 제국주의의 길로 질주하였다. 그러나 이는 결국 미국과 마찰함으로써 국가를 전쟁의 불행으로 몰고 간 ‘광란의 역사’ 로 들어서게 하였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러일전쟁이 시바료타로가 평가한 ‘기지와 용기를 가진 일본의 지도자들에 의한 러시아의 지배 움직임에 대한 명분이 있는 자위전쟁’ 이 아니라 ‘한반도와 만주를 둘러싼 제국주의 성격의 전쟁’ 이라는 반론도 있다.(주8)

일본은 제 2차 대전에서 미국과 전쟁을 치르는 적대국이지만 그 후 러시아가 혁명에 성공하여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공산세력의 종주국이 되자 이를 저지하는 동맹을 맺으면서 경제대국으로 부활한다. 그러나 소련 공산주의는 1세기가 다 되기도 전에 스스로 붕괴되고 러시아로 다시 돌아와서 100년 전의 상황을 기억하게 한다. 달라진 것은 중국이다. 잠자는 거인으로 불리던 중국은 잠에서 깨어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한국 등 동북아 뿐만 아니라 세계에 터미네이터의 힘찬 근육을 과시하고 있다.

러일전쟁과 100년 후 한반도

러일전쟁은 한마디로 말해서 동아시아에서 식민지분할을 위한 열강 간의 세력각축의 결과였으며 만주와 한반도를 둘러싼 두 제국주의 국가의 무력충돌이며 일본의 배후에는 영국, 미국의 자본이, 러시아의 배후에는 프랑스의 자본이 각각 지원한 이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이긴 쪽이 전리품으로 만주와 한반도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한반도는 열강의 묵시적 합의 하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한국은 36년 동안 주권을 빼앗겼다가 2차 대전 후 해방이 되자 분단국의 운명을 맞았다.

물론 한국의 쓰라린 역사의 원인을 두고 국가의 힘과 국민들의 능력부족이 아니라 지정학적인 위치의 무게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한반도가 늘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것을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세력균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미국 작가 잭 런던 등의 러일전쟁 종군기(주9)를 보면 부패의 만연과 지도자들의 비전부족은 조선 국민들에게 일본의 점령이 ‘기쁨의 원천’ 이라고 비꼴 정도로 심각했다. 왕실은 우왕좌왕했고 지도자들은 파벌로 갈라져 내분만 일삼았다.

국민소득 1만 불로 발돋움한 한국을 100년 전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학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한반도의 운명이 강대국의 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지금은 남과 북 뿐만 아니라 동서로 세대로도 갈라져 있다. 그래서 국력의 집중력도 떨어지고 있다. 동맹이 약화되고 있지만 리더들의 말과 행동에서 전략과 신뢰를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래서 “한반도를 겨눈 러일전쟁 당시 한국인들은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라고 묻는 말을 답하기에 아직 자신이 없는 지도 모른다.

(주1) 콘스탄틴 플레샤코프 :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5년까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지정학 센터 소장으로 일했다. 그는 <짜르의 마지막 함대>에서 소설가적 안목과 역사학자의 권위로 러시아 함대의 길고도 험난한 항해와 순식간의 처참한 패배를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한국어로 옮긴이는 표완수와 황의방이다.

(참고) 침몰된 러시아 함대가 동해의 물밑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2000년 당시 동아건설이 황금 1만 4천 톤이 실렸다는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 인양사건으로까지 비화된다. 당시 이 회사의 주식이 거의 50%까지 폭등하였으나 뒤에 흐지부지되었다. 러일전쟁을 제대로 알지 못한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주2) 영국문서에 의하면 당시 동맹국 영국은 일본이 이길 걸로 예상을 했었고, 미국도 일본에게 승산이 있을 걸로 보았다.  그리고 군사력에 있어서도 질적으로는 일본이 우위에 있었다고 판단되었다. 프랑스의 르 프티 주르날지의 '황인과 백인'이라는 삽화에 있는 그림을 보고 흔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표현하는데, 일본을 다윗으로 표현하면 성전의 개념이 되어서 일본의 전쟁 행위가 미화되는 뉘앙스가 되지 않나 우려가 된다고 세종대 석화정 교수가 지적해 주었다. 러시아의 동맹국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러시아가 이길 것으로 생각했고, 유럽국가  대부분이 왜소한 황인종 국가에게 패배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종주의적 편견이 심했다고 한다.

(주3) 제이콥 시프의 일본 전비 지원비화는 월간조선 2004년 2월호 강영수(KOTRA 텔아비브 무역관 차장의 기고(책462-475 페이지)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제이콥 시프는 러일전쟁 후 1906년 일본에 이어 한국도 방문하였다.

(주4) 아키야마 요시후루는 시바료타로가 쓴 역사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 나오는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 일본 육군 기병의 창설자로 육지에서 러시아 군대를 대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육군대장으로 퇴역하여 고향 마쓰야마로 돌아가 무명의 사립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그의 동생 아카야마 사네유키는 해군의 명참모로 러시아 함대를 궤멸시킨 천재적인 전략가이다.

(주5) “영국의 넬슨은 군신에 비유될 수 없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 뿐이다. 이순신과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도 못 된다” 이는 도고 헤이하치로의 말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순신을 잊고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그에 대한 존경심이 계승되어 그의 업적과 전술이 연구되었다.

(주6) 첩보원 아카시 모토지로는 뒤에 타이완 총독을 지냈으며 후에 총리감 후보로 올랐으나 56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아카시가 스위스에서 사들인 무기는 소총 16,000정, 탄약 120만 발이었으며 러일전쟁 후 러시아 혁명분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국제간 무서운 첩보전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주7) 러일전쟁의 국제관계에 대한 내용은 지식산업사에서 출간된 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의 책 <국제관계로 본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병합>을 참고하였다. 이 책의 출간은 국내에서 러일전쟁 연구에 대한 이정표로 평가되고 있다.

(주8) 러일전쟁 100년을 맞으며 요미우리 등 일본의 보수 언론들은 이 전쟁을 미화하고 당시 지도자들을 치켜올리고 있으나 진보적인 아사히 신문 등은 러일전쟁은 한반도 병합을 통한 식민지화와 중국침략으로 이어져 일본을 파탄으로 몰아간 전쟁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 신문은 “러시아가 한반도와 중국 국경지대에 군사시설을 만들었다는 군부의 미확인 정보를 바탕으로 개전이 시작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고 지적하며 “이라크 전쟁의 빌미가 된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생각나게 하는 것” 이라고 강조했다. (아사히 신문 2월 8일)

(주9) 잭 런던은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회주의 작가이다. <조선사람 엿보기> 라는이 종군기는 우리 치욕적인 역사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는 일본 군대를 칭찬하였지만 제국주의 망령과 정신문화의 황폐를 지적하였으며 중국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등 통찰력이 엿보인다. 윤미기가 번역하였으며 한울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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