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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눅스 서버... 일기(1) (日記)
하지만 기계 제작 일이 계속 주문이 들어와서 밀려 있는 상황. 조금 더 야간 잔업을 진중하게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 그렇지만 겨울철이다보니 너무 추워서 또한 야간 작업이 힘들었지만 이제 봄부터는 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계속된 기계 주문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을 더 많은 시간을 기계작업시간으로 충당하여야만 한다는 점이었다.밭에 풀을 메야한다는 현실적인 대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2026.08.13 11:00
'왜, 풀을 뽑기 위해 밭고랑을 멜빵용 방석에 앉아서 주춤주춤 풀을 뽑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그처럼 힘이들까?' 그건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을 할 수 있었다. 이미 제초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 버린 잡초를 농작물 사이에서 손으로 뽑아 내야만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느냐?' 하는 점이었다. 안 해도 되는 걸 구태여 어려운 좁은 고랑에 쭈구리고 앉아서 앞으로 길게 손을 뻗어서 닿는 곳까지 모조리 허리까지 올라오는 풀을 뽑아야만 하는데 그게 이미 커버려서 여러 차례 힘을 주어 재차 시도하는 과정에서 손에 과하게 힘이 몰아 부치다가 한 손이 부족하여 두 손을 동원하여 풀의 가장 아랫부분을 뽑게 되는 두 세 차례의 시도중에 그야말로 손에 무리가 가고 그것이 가슴의 늑골 근육까지 영향을 끼쳤으며 그 잘 밤 호흡하는 것도 가슴이 결려서 아플 지경이었고 그것이 이틀 째 연속으로 이어진 게 되기까지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지내야만 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틀 후부터는 반대로 그런 압박에서 벗어났고 무리하게 육체적일 노동을 한 뒤에 일어나는 해방감과 근육적인 운동 효과로 인해서 오히려 몸이 날아갈 듯 개운했다는 건 또 다른 보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였으니... 농사 일을 하여야하는 이유도 체력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서라는 논리가 성립되기까지의 과정이 이렇게 여겨지지만 가장 우려되는 사항은 '풀을 이틀 째 뽐으면서 몸에 악화된 체력 감소가 계속 되었으므로 견뎌내지 못하게 되면 몸에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여기 저기 문제가 발생하였었고 그로인해서 손가락 관절이 늘어 났고 허리가 아팠으며 가슴 근육까지 통증이 올라 왔을 정도로 심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틀간으로 국환된 건 그만큼 다행스러웠다. 물론 다시 연장할 수도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잡초 제거가 남아 있었는데, '그것을 마저 하면 어떻까?' 하고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었지만 차마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큼 곤혹을 치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올 해만으로 끝나지는 않으리라! 농사를 계속 짓는 한 이런 일은 흔하디 흔한 연례 행사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농촌에서 농사 일을 하는 사람치곤 그런 일들 해 왔었고 그것이 예전에 어린 시절 보아 왔던 농촌에서 외할머니와 이모가 늘상 하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66세인 현재 내가 다시 재현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그 당시의 상황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다만 변한 거라면 그것이 여자가 아닌 남자인 점이라는 게 달랐다. 그렇다고 아내까지도 농사 일을 하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늘 혼자 밭에 왔고 궂은 일을 도 맡아 하게 된다. 이런 내 모습이 싫으면 못할텐데 왜 궂이 사서 고생이란 말인가!' 이상하게도 그렇게 풀을 뽑으면서 몸에 일어나는 고행을 스스로 겪는 느낌을 갖는다. 파리모기와 일반 모기가 웅쿠리고 풀숲에 앉아 있는 동물로 몰려 든다. 한 번 허리를 숙였다 펼 때 눈 앞에서 윙윙대는 모기와 날고 있는 모양이 띄인다. 등짝과 다리와 양발 위 쪽으로 모기가 뜯어 가렵다. 풀이 스쳐간 팔목과 손등이 쓰라렸다. 머리에는 두 겹의 모자를 뒤집어 썼는데 그것이 무척 더웠다. 이렇게 작업하는 동안 1시간에 한 고랑을 흩어 지나 가는 꼴로 벌써 여러 고랑을 작업했지만 여전히 많은 곳이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몸도 지쳤다. 온통 땀으로 축축히 젖어 있는 녹진 거리는 몸에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그만 하라는 신호를 무시한다. 손에 쥔 잡초를 뽑으면서 "북!"하고 뽑혀 나오는 감촉이 얼마나 기쁜가. 그건 옆에 들깨가 느끼는 환호성이 느껴진다. 들깨를 둘러 싼 잡초가 마침내 주인의 손으로 뽑아 나갈 때 들깨는 이제 홀로 남았고 그 주변의 땅을 찾아한 거에 대한 환희와 해방감에 감격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잡초가 커질 때까지 왜 오지 않았냐고 원망하던 상상력이 다시 기뻐하는 걸고 바뀐다. 애초에 크기전 작은 싹이 나오는 걸 봤다면 그곳에 제초제를 뿌렸어야만 했지만 이곳에 오지 못한 이유는 다른 곳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다직 들깨를 심지 못했었다. 그러다보니 먼지 심어 놓은 <군서의 산밭>에는 등한시 하여 이미 왕성하게 풀이 자라났고 그것에 대처하지 못했었다. 한 쪽이 너무 치중했기 때문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건 비가 오지 않아서다. 올 해는 유독 장마철에 즈음했지만 비가 없는 마른 장마였었다. 그래서 이 쪽은 심어 놓고 저쪽을 심지 못한 체 애를 태웠었다. 그리고 이틀씩이나 심어 놓은 들깨조차 말라 비틀어졌고 이것이 며칠 사이에 완전히 다른 상황으로 바꿔 버린다. 그 며칠 동안 한 쪽은 완전히 풀로 점령 당했고 다른 한 쪽은 들깨를 심었던 게 말라 비틀어 졌다. 그러다보니 심어 놓은 곳은 그만큼 신경을 들 썼고 이렇게 풀로 뒤덮여 버린 상태에서 이제는 뽑아야만 하는 마지노선에 이른 경우고 바뀌었으니...
724. '농사 일을 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사실상 모든 인내력을 극복하는 시험대였다. 왜냐하면 구태여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될 일을 역부로 하고 있어서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농업경영체에 등록을 한 상태인데 그것이 직불제와 의료보험료를 절약할 수 있게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혜택을 받는 게 아니었다. 감시와 검사를 하는 담당자가 군청에서 나와 돌아 다니면서 위치를 확인하고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농사 짓다가 그만 무리를 하여 이석증으로 쓰러진 뒤, 입원을 3일 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몸에 무리를 가하지 않도록 늘 조심을 한다. 그 해는 농사를 거의 포기하다시피하여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밭에 상태가 농사를 안 진 것처럼 왜, 풀만 잔뜩 났습니까? 그래서 일부만 농사 짓는 걸로 공제하겠습니다."
"몸이 무리해서 그만 병원에 입원하였네요. 또 감자를 심어 놓은 밭에 멧돼지가 와서 모두 파혜쳐 놓았고 그대로 방치해 둔 겁니다."
이렇게 변명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그 해는 직불금이 얼마 없었다. 매년 연말 경에 직불금이 나왔었다. 농사 짓는 면적 대비 보상금이라고 하면 되었는데 그 돈이 100만원 가량 되었었다 하지만 여기에 피룡한 비료 값, 농약 값, 경운기의 연료 값, 거리가 멀어서 1톤 화물차를 타고 다녀야하는 데 연료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돈이었지만 그게 목 살이를 하는 개처럼 끌려 다니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부담감이었다. 그렇다면,
'왜, 사서 고생을 할까?'
이렇게 의미를 둔다면 명확하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거기 밭이 있어서라고..'
애써 얼버무린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두고서라도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인내력의 실험에 스스로 도전적인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다. 그건 농사를 짓는 체력이 다하기 전에는 계속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시험이었으니까.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시금 체력을 지키기 위해서 늘 고심한다. 그만크 건강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농사를 짓기 위해서라는 명제와 맞아야만 했던 것이다.
구형 일기 - 농사일에 대한 육체적인 변화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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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의 해킹 되어 서버가 느려지고 지연되는 현상이 있어서 부득불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만간 다른 방식으로 방어 방식을 구성하여 정상적으로 운영하겠습니다.
2~3일 지난 글은 비밀글로 전환을 시키게 됩니다. 너무 많은 게시글을 갖고 있으면 홈페이지가 느려지게 되어서요. 그래서 검색을 하지 못하도록 비밀글로 바꿔 놓았습니다.
